"무용은 나를 온전히 살게 하는, 나의 멘토이다"
환경 등 사회문제, 춤으로 공감하고 치유
청소년 위한 '몸의 학교' 운영

제1장. 울람바나(거꾸로 매달린 자의 고통). 잊지 말지어니. 태고에서부터 첨단의 오늘까지 살아간다는 것은 늘 부단한 고행. 때론 가족도 추억에서나 아름다운 법일진대, 모진 현실을 직시하라. 그리고 버리라. 그리하면 너의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으리니…

작품 <목련, 아홉 번째 계단으로>가 지난 1월 파사(婆娑)무용단 10주년 우수 레퍼토리 공연 무대에 올려졌다. 목련구모(目連救母). 이승에서의 무거운 업(業)으로 '지옥불'에 던져진 어머니를 구하고자 애쓰는 목련존자의 '지옥순례기'인 이 작품은 안무가 황미숙의 스케일을 증명했다. 수작(秀作)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파사무용단은 제26회 서울무용제에서 이 작품으로 2005년 대상을 수상했다.

파사무용단 황미숙 예술감독(분당교당·법명 수진). 그를 만나기 위해선 그의 작품을 먼저 알아야 했다. 그는 이미 한국 무용계에서 '독립무용단'의 강인한 생존력을 보여주고 있는, 작가정신으로 무장한 손꼽히는 안무가였다.

"우리의 소매 깃이 너풀거리는 모습을 일컫는 '파사'라는 낱말을 처음 들었던 순간, 가슴에 명징하게 박혔어요. 그 의미와 상징이 너무 깊어서 늘 감사하게 생각했던 명칭입니다." 그는 '신라시대의 여 사제'를 지칭하는 뜻이기도 한 '파사'라는 단어를 무용단 명칭으로 바꾼 후 10년의 세월이 흘렀다고 했다.

'제26회 서울무용제'대상과 2006년 '올해의 예술상' 수상, 2007년 '뉴욕아시안컬쳐페스티벌'초청 단독공연, 2009년 '숭어의 하늘' 작품으로 '환경부장관 공로상' 수상… 10년의 세월은 그의 춤에 대한 열망과 노력이 사회로부터 공인되는 기쁜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면에 고스란히 자리 잡은 힘들고 어렵고 슬펐던 시간들이기도 했다. '안무가'로 걸어 온 그 길에는 그의 수많은 기억과 흔적 속에 놓여진 아픔들이 있었다.

"어느 날, 어머님(교동교당· 김일은행 교도)이 어른들 행사에 한국 춤을 춰달라고 하셨어요. 어머님을 따라 교당에 갔는데, 교무님의 경종 소리가 어린 마음을 두드리며 울림이 컸어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뛴다는 그는 모친께 감사했다. 무용을 만날 수 있게 해줬고, 춤 작업에 대한 의지를 잃지 않도록 해 준, 그의 의지처였기 때문이다. 그는 표현하지 못했던 모친에 대한 감사함을 어쩌면, 그의 작품 〈목련, 아홉 번째 계단으로〉에 녹여냈는지도 모른다.

파사무용단은 '한국적인 현대무용을 독보적으로 하는 단체'라는 평을 받고 있다. "10여 년 전, 일본공연 때 '문화'의 소중함을 깨닫게 됐어요. 제가 현대무용을 하지만 제 몸속에는 한국적인 정서와 문화가 배어 있잖아요. 또 우리의 전통 춤을 배우면서 한복 속에 가려진 '몸의 흐름'을 알게 됐지요." 그는 한국적인 몸짓과 호흡을 현대무용에서 어떻게 살려낼까에 매진했다. 비단 몸의 동작뿐 아니라 빗살무늬와 한옥 문, 기왓장 문양 등 한국건축의 이미지 활용과 음양오행의 철학적 의미까지 현대무용에 담아내는 작업을 했다. 그의 인내심과 끈기는 이미 무용계에서 '지독함'으로 정평이 나있다.

"파사무용단은 두 가지 미션을 행하고 있습니다. 환경문제와 청소년문제에 대해 춤으로써 공감하고 치유하는 것이지요." 그는 환경문제를 통한 사회 참여적 작품으로 〈숭어의 하늘〉을 발표했다. 울산 태화강의 숭어, 오염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모래주머니가 하나 더 생긴 회귀본능의 어종 숭어에서 그는 변화된 삶에 적응하려는 생물체의 진화노력을 춤으로 다뤘다. 2006년 초연된 이 작품은 2009년 앵콜 공연을 하기도 했다.

파사무용단은 현재 두 번째 미션도 시행중이다. 청소년들의 잘못된 집단주의 문화를 함께 고민하고 치유하기 위해 〈칼네아데스의 선택〉이라는 작품을 과천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초연했다. 공연 직후 실시한 학생들의 설문조사에서 청소년들은 집단 따돌림 '왕따'의 심각성을 서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3년 동안 공연을 지속하면서, 조금 더 그들 곁에 가까이 가고 싶었어요. 공개 오디션을 통과한 청소년들과 프로 무용수들이 함께 무대에 설 수 있는 〈서랍속의 시간〉이라는 새 작품을 만들었어요." 그는 작품을 통해 진솔한 청소년들의 문제를 더욱 공감할 수 있었다.

이후 서울대안교육센터에서 진행하는 '징검다리 프로그램'에 작품이 선정돼 대안학교나 홈 스쿨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다. 이를 발전시켜 그는 춤을 통해 청소년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치유하는 '몸의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독립무용단의 현실적 어려움을 고스란히 안고 가는 파사무용단 지하 작업실은 이렇게 청소년들을 위한 치유공간으로 한 몫을 더 해내고 있는 것이다.

'무용은 나를 온전히 살게 하는 멘토이다'고 말하는 안무가, 황미숙. 그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를 '온전히' 보여주고 있는, 진정 아름다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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