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를 생각한다'는 뜻을 갖고 있는 염불(念佛)은 부처의 모습이나 공덕을 생각하면서 아미타불(모든 중생을 제도하려는 원(願)을 품은 서방 정토의 부처 이름. 이 부처를 염송하면 죽은 뒤 극락정토에 태어날 수 있다고 함)을 부르는 불교의 수행방법이다.

과거에는 서방 정토에 나기를 염원하며 아미타불을 염송하였지만, 원불교에서는 자심미타(자기의 본래마음이 곧 아미타불 이라는 뜻)를 발견하여 자성 극락에 돌아가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염불은 천만가지로 흩어지는 생각을 일념으로 만들기 위한 공부법이며, 순경과 역경에 흔들리는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한 공부법으로 정신수양 과목이다.

불교는 신앙을 중심으로 하는 타력불교와 수행을 중심으로 하는 자력불교로 나눌 수 있다. 부처님의 신력에 의지해서 소원을 이루기 위해 아미타불을 염송하는 염불은 대표적인 타력신앙이다.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는 염불만이 극락왕생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정토종이나 소의경전인 묘법연화경의 이름에 진리와 위력이 담겨있다며 '나무묘호렌게교'('나무묘법연화경'의 일본식 발음)만 외우면 성불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창가학회 등에서 염불은 직접적인 신앙행위이다.

염불의 진리를 아는 사람은 염불 일성이 능히 백천사마를 항복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진리불공의 방법으로 염불 등으로 일심으로 정성을 올릴 것을 권장한다. 기도가 직접적인 신앙 행위이면서 동시에 중요한 정신수양 과목이듯이, 정신수양 과목인 우리의 염불도 전통적인 염불이 갖고 있는 신앙적 의미를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짚신장수 한 사람이 '즉심시불(卽心是佛)'을 '짚신 세 벌'로 알아듣고 여러 해 동안 '짚신 세 벌'을 외우고 생각하여 결국 마음이 곧 부처인 줄을 깨달았다고 한다. 큰 공부는 주문 여하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정성 여하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정한 바 주문이 있다면(나무아미타불, 영주, 성주, 청정주 등) 그것으로 정성을 들이는 것이 공이 더욱 크다.(변의품 13장)

대종사께서는 염불과 좌선을 굵은 대패와 가는 대패에 비유해 주셨다. 번뇌가 과중하면 먼저 염불로써 산란한 정신을 대치하고 좌선으로써 원적의 진경에 들어야 한다.

대종사께서는 "초학자는 좌선보다는 염불을 많이 하라"고 하셨고, 일심공부의 방법을 묻는 제자에게 정산종사께서는 "우선 하루에 염불 7편씩만 하여 보라"고 하셨다.

현대인들은 상근기나 초학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수시로 일어나는 잡념 때문에 힘들어 한다. 세상은 갈수록 단순한 것들을 선호한다. 자신 수행뿐만 아니라 교화 차원에서도 염불의 교리적 위치나 의미, 활용을 재조명 해볼 필요가 있다.

<미주서부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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