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홍인 교무·만덕교당(논설위원)
여름 방학이 시작됐다. 방학이 시작되면 당장 떠오르는 것이 규칙적인 일과가 조금 흐트러져도 좋다고 여겨졌던 학창시절이다.

늦잠을 자도 허용이 됐다. 친구집에 가서 며칠을 놀다 올 수도 있었다. 먼 친척집은 방학이 되어야만 찾아갈 수 있었고, 집을 떠나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던 시절을 어른이 된 지금도 기분 좋게 기억되는 것은 아주 작은 일탈이 주는 자유에서 오는 달콤함 같은 것이었다.

청소년문화의집 등대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방학하면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이냐고 했을 때, 갑자기 아이들은 없던 생기가 어디서 불려왔는지 일제히 외쳤다. "늦잠자서 좋아요. 제일 좋아요"라고 강조까지 한다. 요즘 학생들의 일과는 참으로 길어서 대체로 한밤중 12시를 넘어 잠자리에 드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그리고 낮동안 일상이 버거울만큼 피로가 누적된 채로 생활하기에 방학이 주는 느슨함과 짜여진 일과로부터의 허용이 심히 반가울 것이다.

그렇지만 아주 짧게 주어진 그들의 느슨함은 길게는 10일에서 7일이 고작인 경우가 많다. 다시 보충수업으로 학원으로 이어지는 일과 속으로 들어가게 되어있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의 많은 청소년들의 현실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대다수도 있지만, 그들도 마냥 편안하게 방학을 보내지는 못한다. 상대적인 긴장과 불안감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이처럼 짧게 주어진 시간동안 우리는 어떻게 청소년들과 만날 것인가? 교화자에게 주어진 숙제도 만만치 않다. 부모님들에게 주어진 과제도 무겁다. 교무님들이 다 해결해주지 못하고, 학교선생님들이, 학원에서, 부모님이 다 해결해주지 않는다. 그들의 채워지지 않는 부분을 스스로 하도록 돕는 길이 또한 방학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주어진 성장을 위한 과제일 것이다. 그런 학생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다가설까? 부모로서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감히 내 경험을 비추어 제안하고 싶다.

먼저 방학이 시작되면 어른을 뵙도록 안내하고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집안의 어른도 좋고, 교단의 스승님도 좋고, 학창시절 존경했던 선생님을 찾아 뵙는 것도 좋다고 본다.

나는 고3 여름방학을 시작하자마자 완도소남훈련원으로 대산종법사님을 찾아 뵙고 오라는 교무님의 명령이 떨어졌다. 고3이 된 학생회 친구들과 완도소남훈련원에 계셨던 대산종법사님을 뵙기 위해 낯선 완도로 갔다. 나무그늘에서 2시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종법사님께서 교단의 원로스승님들과 함께 동백숲 야단법석으로 오셨다. 그 때 모인 대중은 일제히 일어나 환호를 보냈고, 배알을 온 교도님들은 순서대로 인사를 올렸다. 차례로 소개가 끝나자 노래도 부르고, 감상담 발표시간이 됐다. 시봉진이 우리들을 인사시키셨고, 난 그 자리에서 출가서원을 올린 기억이 난다. 너무나 먼 과거가 되었지만, 지금도 생생한 것은 내게 방학의 시작과 종법사님 배알은 종법사님과 원로스승님들의 자비스런 인사와 눈여겨 봐 주심으로 기억하기 때문일 것이다.

둘째는 교당에서나 훈련원에서나 1박2일의 출가생활을 가져보도록 하자는 것이다. 방학을 하자마자 대학생이 된 집안 조카가 교당을 다녀갔다. 그리고 그 감상을 부모님께 보고 하면서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꼭 교당안에서의 출가만이 아닐 것이다. 진하게 땀 흘릴 수 있는 봉사현장도 좋을 것이다. 집안에서의 생활이 아닌 타인의 삶 속에 들어가 보도록 하는 것이다.

교도님들의 가정끼리 결연을 맺는 것도 한 방법이다. 내 아이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간, 내 부모를 내 요구대로 바라보지 않을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고 본다. 어쩌면 방학기간을 통해 내 부모와 자녀가 동시에 성장하는 기회로 삼아 타자녀교육을 통해 나자신을 돌아보고 서로의 성장을 북돋는 시간을 꼭 마련해보는 용기를 내자고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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