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독한 외로움을 경험한 적이 있다. 내 나이 서른하나. 교제중인 여자 친구가 있는데 결혼이란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며 결혼을 꼭 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게 됐다. 부모님도 그렇지만 결혼을 먼저 한 친구나 선배들이 "결혼 늦게 하라", "결혼하면 네 인생은 없다"고 충고들을 하니 다시 한 번 생각 해 볼 수밖에.

우리의 인생에 왜 결혼이 생겼는가. 태초에는 없었는데 왜 인간은 결혼을 만들었을까. 깊게 고민을 하던 중에 이 고민을 여자 친구에게 말했다가 심한 욕을 먹었다. 내 감정을 이야기 하고 고민을 공유하고 싶어서 말했는데 여자친구 입장에서는 그렇게 들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내가 잘못했다.

하지만 그래서 일까. 며칠 뒤 우리는 사소한 말다툼 끝에 이별을 하기로 결정을 했다. 정말 사소한 일인데 남자 체면에 먼저 사과 할 수 없어서 분을 삭이며 한강으로 나가 자전거를 탔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내 마음속에서 '헤어짐 자체가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라는 깨달음이 왔다. 아! 그렇구나! 내가 또 하나 깨달았구나!

난 이때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에 이것이 내 안에 깊은 믿음으로 자리 잡을 줄 알았다. 그래서 이별로 인한 괴로움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고 진정한 고통은 그 이후에 시작됐다.

매일 하던 전화통화, 연락, 만남이 사라지자 급격하게 외로움이 밀려왔다. 왜 이렇게 외로울까 한참 고민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무소의 뿔처럼… 무소의 뿔처럼…'을 중얼거리며 스스로를 억눌렀다.

하지만 그러면서 깨달았다. 나는 왜 사는가. 나의 존재는 어디서 오는가.

나는 나의 삶속에서 내가 살아 있는 이유, 나의 존재 확인을 여자 친구와 함께 하고 있었다. 나의 감정을 가장 가깝게 이해해 줄 단 한 사람. 그것만으로도 팍팍한 삶에 큰 위로가 되었나보다. 그런데 그런 끈이 끊겼으니 존재 확인이 안 될 수 밖에.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당장 달려가 진심을 털어놓고 사과하게 됐다. 처음에는 냉랭하던 그녀가 다행히도 내 진심을 알아주고 이야기를 다 듣자 마음이 풀린다며 나를 다시 받아 주었다.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그러나 사람은 각자 혼자 있을 때 자신의 존재를 확인 할 수 있는 방법을 갖고 있으면 좋다고 한다. 즐거운 일을 찾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고 즐거운 일이 무엇인지를 평생 연구하는 게 원불교 인이 해야 할 의무(?)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는 내가 아직 누구고,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여러분도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내 속에 있는 나에게 뭘 좋아하는지 물어보고 찾아보시길 바란다. 가장 즐겁게 사는 것이 가장 원불교인 다운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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