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성공과 실패의 차를 내게 되는 것은 구하는 데 있어서 혹 순리(順理)로, 혹은 역리(逆理)로, 혹은 사실(事實)로, 혹은 허망(虛妄)하게 구하는 까닭이라 하셨다.

순리로 구하는 사람은 남을 좋게 하면서 자기가 좋아지는 자리이타의 도를 행하므로 한없는 낙원을 개척하게 되고, 역리로 구하는 사람은 자기만 좋고자 하여 남을 해하는 자리타해로 죄고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사실로 구하는 사람은 모든 복락을 이치에 따라 당처에 구하므로 그 성과를 얻게 되고, 허망하게 구하는 사람은 모든 복락을 알 수 없는 미신처에 구하므로 아무 성과를 얻지 못한다고 하셨다.

우리가 유년 시절에 읽은 〈바람과 태양〉이라는 동화가 있다. 대강의 줄거리는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기 위해서 먼저 바람이 강한 바람을 보냈더니 나그네는 오히려 외투를 더욱 움켜쥐게 됐고, 반면 태양은 강한 햇빛을 보내 마침내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게 되어 결국 태양이 바람을 이겼다는 것이다. 이것이 순리이다.

한 가정의 일이나 세상의 일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진행하는 것이 순리다. 피곤하면 잠자고 배고프면 밥 먹는 것이 순리다. 그러므로 순리가 곧 진리요 도이다.

우리 공부인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교서 곳곳에 있는 말씀대로 실천하는 것이 순리대로 사는 삶이다.

대산종사께서는 '누구나 바르고 원만하게 꾸준히 하면 반드시 때가 오는 법인데, 모두 욕속지심(欲速之心)으로 순서없이 하려고 하니 결국 실수하고 만다'고 하셨다.

순리를 버리고 역리를 취하면 난세에는 목숨이 위태로우며 보통 때는 주위에 좋은 사람과 있던 재산도 흩어진다. 삼세를 통해 역리의 언행을 일삼을 때 앞길이 막히는 것이 바로 당연한 이치이며 진리일 것이다.

불안한 심리를 가진 현대인들은 욕망을 이루는데 있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직시하기보다 허망으로 구하는데 에너지를 많이 소진한다. 그리하여 또 다른 고통을 장만하거나 과학적 근거가 없거나 보편성을 지니지 못한 일에 두뇌와 심장을 빼앗기곤 한다.

일상 생활에 요행과 무계획성을 버리고 합리적이고 계획적인 수지대조로 여유있는 새 생활을 개척함은 사실과 순리의 떳떳한 길이다.

역리보다는 순리, 미신처보다는 사실을 지키는 순화된 세상, 맑고 고운 세상, 희열과 축복이 넘치는 낙원이 전설이나 신화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이 땅에, 이 삶 속에서 지금 이뤄낼 수 있는 이상향임을 다시 한번 확신하자.

<전 영산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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