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찬수 교도·백수교당(논설위원)
종교가 정치에 미치는 힘은 무한하다. 잘못된 생각을 가진 자에게는 올바른 길을 인도해 주고 탐욕의 마음을 정화시키며,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쉬어가는 시간을 갖는 행복을 주는 곳이 종교이다. 하지만 정치인에게 있어 쉬어가는 휴면기는 고통의 연속일 것이다. 그래서 정치인이 휴면기에 찾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종교이다.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고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으며 내일을 위한 충전의 원동력이 바로 종교이기 때문이다.

현 정치인들의 정치에 대한 소명과 의무는 어떠한가? 탐욕과 불신이 난무하다. 물론 모든 정치인이 다 그렇다고 단정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현 정치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총성 없는 전쟁터를 보는 것 같다. 잠시만 뒤돌아보면 정치인의 소명과 의무가 무엇인지를 금방 알 수 있는데 개인과 정당만의 이익을 쫓는 모습은 나 자신을 성찰하게 만든다.

이제 우리 사회는 지역, 세대, 노사의 갈등을 해소하고 조화로운 공동체를 만드는데 혼신의 노력을 할 때라 생각한다.

연결고리라는 우리에게 친숙한 말이 있다. 종교에서는 인연으로 표현하는 말일 것이다. 세상사 인간에게는 수많은 연결고리가 있다. 꼬여진 고리가 있는가 하면, 술술 풀어지는 고리도 있다. 다시 말해 좋은 인연과 악연이 있다는 뜻이다.

국민들은 정치인에게 바라는 고리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민심을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정치인은 실현 불가능한 일들을 실현 할 수 있는 것처럼 공약을 남발하는 사례가 많다. 아울러 정치인의 초심을 망각하고 권위주의에 빠져 사회양극화를 만들고, 사회안전망을 위협하고 있다.

금년은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이다. 각 정당 대통령 후보들은 경제개혁부터 사회복지까지 다양한 정책을 발표하고 있지만 그들만의 잔치로 끝나고 있는 분위기다.

오직 당리당략에 빠져 국민들은 국가의 운명을 앞두고 무관심으로 항변하며 정치에 대한 불신을 내보이고 있다. 그만큼 정치인이 국민들의 품안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반된 민심을 아우르고 다가서야 함에도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신뢰와 믿음'을 주지 못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내가 배고프고 힘들면, 남들도 더욱 힘들고 배고플 것이란 진리를 무겁게 새겨 들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 정치는 내 욕심과 배고픔을 채우고 난 뒤에야 국민을 바라보는 옹졸함을 보이고 있어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저변의 소리를 귀담아 들으며 국민들의 애환과 고통을 함께 나눌 줄 아는 정치인들이 보이지 않는다. 국민은 이런 소신 있는 정치인들을 원하고 있지만 현재의 정치 토양에서 올바른 정치인이 성장하기에는 역부족인 듯 싶다.

지난 날 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우던 촛불의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 황금 만능주의에 젖어있고 구태의연한 발상을 가진 정치인의 행보는 생명력이 없다. 마음의 양식과 헌신적인 정치인은 민심을 대변함에 있어 부족함이 없다. 오히려 떳떳할 것이다. 마음의 양식은 책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 수련에 의한 마음에서 찾는 것이며 종교에서 지혜를 얻어야 한다. 우리의 정치사를 들여다보면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선 관대하고 용서하려고 하지만 죽어있는 권력과 죽어가는 권력에 대해서 무차별적으로 징벌한다. 포용의 미덕은 찾아보기 힘들다. 안타깝고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종교는 모두에게 평등하다. 특히 정치적으로 버림받았거나 배신을 당한 사람에게는 더욱 마음의 안식을 가져다 준다. 4월11일 국회의원 총선거를 마치고 야당 정치지도자가 영산성지에 왔다. 패배에 따른 엄청난 충격을 위안 받고자 하루 밤 성지에서 묵은 것이다.

물론 원불교 교도는 아니다. 하지만 그분은 영산성지의 성스러운 기운에 감복하면서 종교가 정치에 미치는 힘은 무한하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원불교에 대한 좋은 인연을 간직하고 있다. 이렇듯 종교는 모든 정치인에게 평등하다. 오직 종교는 정치인이 국민과 함께 청렴하고 책임정치를 펼쳐 주기를 염원하고 있다. 만인이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 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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