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더위 식고, 마음 번뇌 가라앉는 송대 오솔길

▲ 영모전과 송대, 대종사성탑과 이웃한 이 연못은 그리 넓지도 크지도 않지만 항상 적적하고 고요한 곳이다.
연일 찌는 듯한 더위에 불쾌지수가 마구 올라간다.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에 익산성지의 송대 오솔길에 오면 시원하다. 초기교단 선진들의 숨결이 살아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총부 정문을 지나 우측으로 가면 소태산대종사성탑이 나온다. 전국에서 찾아오는 원불교 교도들이 한 번씩 꼭 들러가는 곳이다. 대종사성탑은 좌로는 영모전을 사이에 두고 연못이 있으며 뒤로는 소나무 숲을 이루고 있다.

익산성지 내 연못과 송대

예비교무 1학년 때 동기교우들과 함께한 공부모임에서 강연을 담당하게 됐다. 수차례 원고를 완성해 보아도 늘 무엇인가 빠진 듯 한 느낌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스스로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있던 강연이기에 발표하기를 주저했다. 시간은 자꾸 지나가고 내 발표차례가 다가왔다. 스스로 부족함이 느껴지는 원고를 가지고 며칠째 씨름을 하던 중에 '이것도 내 욕심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며칠째 붙잡던 원고를 놓고 한가로운 마음으로 산책을 했다. 그 때 갔던 곳이 연못이다.

영모전과 송대, 대종사성탑과 이웃한 이 연못은 그리 넓지도 크지도 않지만 항상 적적하고 고요한 곳이다. 한가로이 노니는 물고기들, 조용히 흔들리는 바람결에 내 마음을 맡겨보면 욕심도 화도 바로 가라앉힐 수 있는 곳이었다.

욕심을 비우고 마음을 안정시키고 나니 그동안 부족하고 갈증을 느꼈던 부분을 바로 정리할 수가 있었다. 그 결과 담당했던 강연을 원만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이후로 이 연못을 자주 찾게 됐다. 때로 나 혼자이고 싶을 때, 혼자이나 누군가와 함께임을 느끼고 싶을 때면 항상 이곳을 먼저 떠올리곤 했다. 하지만 연못이 그리 넓지 않기에 한 두 바퀴 돌면 자연 다른 곳으로 발걸음이 옮겨진다. 연못 위쪽의 송대를 지나 소나무 숲으로 들어서면 시원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산책로가 있다. 익산성지 안에서 비교적 인적이 드물고 조용한 곳이다.

이 송대 소나무 동산은 과거 도치고개라고 불렀던 곳이다. 낮에도 햇볕이 잘 들지 않고 어둑어둑하면 도둑들이 많아서 도치고개라 불렀다. 도치고개를 대종사는 도둑이 치성하는 도치고개가 아닌 앞으로 '도덕으로 다스린다'고 하는 도치고개로 바꾸어 부르게 했다. 사람들의 인적이 드문 이곳에 도덕회상의 총부가 자리를 잡고 나서는 많은 변화가 온 셈이다. 돈과 재물을 뺏긴 사람들의 아픔이 서린 곳은 새 회상의 법을 만난 구도자들의 구도열정과 사연들로 가득하게 된 곳이다.

선진들의 공부 장소

남녀가 유별하던 시절, 그저 여자로서 배우지도 못하고 사회에 아무런 이익을 주지 못한 채 한 가정에 얽매어 살아야했던 여성들. 당시 사회에서 자신의 국한을 벗어나고 이 세상을 위해 큰일을 하고자 출가를 단행했던 여자교무들이 많았다. 하지만 워낙 다른 사람들 앞에 서 본 적이 없었고 말할 기회가 없었던 여자교무들은 대중 앞에서 강연이 매우 힘들었다. 그 힘든 강연을 연습하기 위해서 찾았던 곳이 성탑 뒤의 소나무 숲이었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던 여자교무들은 소나무 숲을 보면서 많은 사람이 모인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소나무를 대상으로 강연 연습을 했다. 그렇게 노력하여 현재 우리들에게 많은 설법을 해주는 법사, 선진이 된 것이다. 남몰래 연습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고자 했던 그 열정과 서원으로 자신의 껍질을 벗어나서 대종사의 전법사도로 새 회상의 지도자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한 선진은 평소 술을 좋아했다. 하지만 공부를 서원하면서 계문을 지키고자 금주를 결심하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밤늦게 일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소나무 숲의 옆에 있는 주막에서 술 익는 냄새가 구수하게 나고 있었다. 이에 마음이 동한 선진은 주막을 향해갔다. 그러다가 스스로 결심했던 금주 계문을 지키고자 "네 이놈"하고 자신에게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고 공부하고자 했던 서원을 지켜낸 곳 또한 이 소나무 숲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그리고 송대 뒤편에는 산책로보다는 조금 넓게 펼쳐진 공간이 있다. 그곳은 대산종사와 문답감정을 받던 곳이었다고 한다.

시원한 그늘에서 스승님의 지도를 받으며 공부했던 곳이라고 생각하며 그 길을 거닐어 본다. 부끄러움 속에 강연연습을 하던 선진들의 음성이 갊아 있고, "네 이놈" 호통치며 공부하던 선진들의 공부심이 끓어오름을 느낄 수 있다. 대종사와 정산종사, 대산종사의 법향이 훈훈하게 느껴진다.
▲ 송대 오솔길은 솔바람이 더위를 잊게 한다.
법열 솟는 소나무 길

원기56년 여름, 당시 대산종법사는 송대에서 학생들에게 했던 법문이 있다.

"송대에서 학생들에게 말슴하시기를 '조수왕래(潮水往來)하는 것이 큰 법문을 한다. 들어올 때는 서서히 들어오나 빠져나갈 때는 급하고도 빨리 빠져나간다. 사람도 공부를 통해 진급할 때에는 순서를 따라 서서히 올라가나 강급할 때는 마음 한번 잘못 먹으면 그냥 잠깐 사이에 떨어진다. 내가 오늘 너희들에게 실지법문을 하려 하니 저 앞의 난초를 보아라. 저 난초가 바로 법문을 하고 있다. 저 난초는 김서룡(金瑞龍)선생이 폐병으로 송대에서 치료를 하고 있을 때 그 고통을 덜기 위하여 나와 같이 심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송대의 솔밭에 그냥 있으니 누가 가꾸지 않아서 저같이 연약하다. 얼마 안 가면 다 없어질 것 같구나. 그러나 난초를 심은 후 지금까지 잘 가꾸었다면 수 없이 번식하고 크게 잘 자랐을 것이다. 사람도 이와 같다. 기숙사에 들어와 훈련을 받으며 저녁에 염불과 참회 반성하고, 아침에 좌선하면 그 때는 별 것 아닌 것 같으나 4년 지나고 나면 딴 사람이 된다. 저 일학년들을 보아라. 몇 달 전만 하여도 얼굴이 찡그러지고 검더니 이제는 반듯해지고 밝아졌다. 공부하는 것이, 별 것 아니다. 곡식을 가꿀 때 풀 매고 비료 주고 소독하면 되듯이 사람도 가꾸면 된다. 남이 안가꾸어 주면 자기라도 가꾸어야 한다. 한 번 대종사님과 이 회상에 바쳤으니 속은 폭 잡고, 안 난 폭 잡고 일생을 잘 나가야 한다."

솔잎에 스치는 바람이 시원하게 내 품안을 돌아나간다. 무더운 여름, 바람조차 느낄 수 없을 때 시원한 냉수 한 잔 들이키듯 내 가슴이 답답할 때, 결정될 일을 당하여 정리가 되지 않을 땐 성탑을 돌아 소나무 숲을 거닐어 보자. 더위도 식히고 마음의 열을 식히면서 스승님의 자비성안을 느껴보면 좋겠다. 소나무 숲에서의 산책과 명상을 마치면서 내려오는 길에 보이는 붉은 노을은 어느새 가라앉은 내 마음에 다시 법열을 솟게 한다.

이 여름 내내 송대 소나무 길을 거닐며 내 마음까지 다 알아주고 받아주는 스승님의 미소를 그려보고 싶다.

<원불교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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