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생지 법생지

영산대성지 靈山大聖地
법생지 은생지 法生地 恩生地

영산은 근원성지로 새 세상의 주제불이신 소태산대종사의 색신여래와 법신여래가 탄생한 곳이요, 법인성사로 법계인증을 얻고 방언공사로 영육쌍전의 터전을 닦아 새 회상을 크게 열어주신 만고일월의 대성지이다. 영산은 소태산대종사의 법신여래가 나투신 곳이므로 법생지이고, 또 색신여래가 탄생한 곳이니 은생지라는 말이다.

'법생지 은생지'를 목판에 쓴 휘호다. 한지에 쓴 친필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목판에 쓴 글이라면 한지에 직접 쓴 친필도 있으리라 본다. 누군가 소장하고 있다면 공개하여 공인을 받는 영광을 누리시길 바란다.

목판에 쓴 휘호는 두 편이다. 오늘 소개한 한 편은 옛 왕궁 상사원에 보관 중이다. 고목을 세로로 잘라 켜고 붉은빛이 감도는 바탕에 두 갈래로 뻗은 나뭇가지의 나이테 무늬가 선명함이 자연스러움을 더한다. 목판에 직접 글을 쓰고 자연그대로 놓아둔 상태라 먹물 흔적이 그대로 배어있다. 또 하나의 작품은 부산교구청에 걸려있다. '법생지 은생지'를 가로체로 쓰고 글씨 테두리를 얇게 파서 돋을 새김 모양으로 그 위에 광칠을 했다. 가로 모양으로 켠 나무 중앙에 좀 먹어 패인 무늬가 법생지 은생지 두 글씨를 갈라놓고 '지'와 '은'밑에 획을 그은 모양이 'ㅗ'를 닮아 이채롭다. 자연스럽게 좀 먹어 패인 문양이 있어 흠같이 보이지만 그 밑에 '대산'의 호를 써서 오히려 살려 쓰셨다.

대산종사께서 하와이국제훈련원 봉불식에 참석하고자 준비를 할 무렵 목판에 글씨 쓰기를 즐기셨다. 한지에 일원상을 온 방 가득히 그려 놓고 기원을 올리셨다. 때마침 문양이 좋은 목판이 있어 올리니 일원상을 그리시곤 흐뭇해 했다. 그리하여 지리산 자락 둘레길을 돌고 돌아 귀목과 괴목을 모양 그대로 켜서 샌드페이퍼로 문지르고 갈아 매끈하게 다듬어 올려드렸다. 목판에 흠이 없고 매끈한 나무 보다는 볼품없는 모양을 좋아했다. 붓글씨를 쓰기에 옹색하지만 좀 먹은 나무도 괘의치 않고 법문을 쓰시면, 그런 목판들이 오히려 빛이 났다. 하와이훈련원을 방문할 때 옷가지나 일상 생활물품보다는 목판에 새긴 원상이 도리어 많았다. 이 많은 원상을 비행기로 싣고 갈 걱정이 앞섰지만 요긴한 선물이 되어 미주 전역과 남미 여러 나라로 퍼지게 됐다. 이 원상 목판은 일원대도를 세계에 전하고자 하는 염원을 담은 선물이리라.

정산종사 영산을 가시다 원평에서 정양 중인 대산에게 문병 와 "서울이 자네의 은생지라면 원평은 법생지일세"라고 했다. 법생지라 함은 대종사께서 남기고 간 법문이 나오기 시작한 곳이란 의미 같았다. 평소 원평을 마음의 고향으로 여기고 있었던 터라 어른이 말씀하심에 이곳이 법생지 은생지라는 마음을 더욱 확고히 했다.

사람마다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곳이 있고,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이 있다. 대개 그곳을 고향이라고 한다. 대산종사는 진안 좌포가 고향이다. 그 고향에서 대종사를 만나 이 회상에 입문한 기연이 된 땅이다. 익산 총부로 출가하여 제2의 고향이 됐고, 서울, 양주 등에서 병고로 정양하다 생명을 얻은 땅이라 고향이 됐다. 원평에서 정양하다 마음의 고향을 찾았다 하여 법생지라 했다. 이곳뿐 아니라 신도안, 완도, 하섬, 대구 등 모두가 고향이라고 했다.

대산종사는 훗날 "영산성지뿐 아니라 모든 성지와 내가 머물던 곳과 더 나아가 대종사님이 다녀가신 우리나라가 법생지 은생지이다"라고 했다. 나의 참 고향은 법생지 은생지임을 알려 주심이지 않을까?

<원불교100기념성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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