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로 강박증을 이겨 냈어요"
'경계에 멈춤' 유념공부로 속 깊은 공부
'일과에서 득력'수행줄 잡아 적공

한 여름, 하이얀 뭉게구름 가득한 나날이 이어진다. 무덥지만 눈을 즐겁게 해주는 하늘의 향연에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배롱나무꽃이 한창이니 더 할 나위가 없는 즐거움이다.

천안으로 가는 길은 이런 기분을 더 느끼게 해 주었다. 대종ESL영어학당에 도착하자 권대오(51) 교도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친절하게도 주차장까지 안내를 해 줬다. 선한 첫 인상이다. 그의 안내에 따라 서재에 앉자 대종사와 역대 종법사들의 사진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원불교와 인연은 대학교때부터 시작됐습니다. 당시 몸과 마음이 아픈 상태여서 귀의처를 찾고 있었죠. 심리학부터 정신의학, 각 종교관련 서적까지 탐독하며 아픈 곳을 치료하려고 했죠. 이렇게 방황하다가 우연히 금정교당을 찾게 됐습니다. 교무님께서 〈원불교전서〉를 건네주며 좌선법을 보여줄 때는 '전기에 감전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대학시절 강박증과 우울증으로 시달리던 그가 교당을 다니면서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치료를 위해 교회의 통성기도 뿐 아니라 단전수련 등을 섭렵하며 완치를 위해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대종사께서 가르쳐 주신 좌선법은 어떤 경전보다도 선에 대해 간단명료했어요. 특히 '호흡을 고르게 하되 들이쉬는 숨은 조금 길고 강하게 하며, 내쉬는 숨은 조금 짧고 약하게 하라'는 대목에서는 내가 터득한 내용과 일치하는 것에 깜짝 놀랐지요."

그는 4월에 열린 대전충남교구 교리강연대회에서 '강박증의 고통을 이겨낸 깨달음의 이야기'로 장려상을 받은 바 있다. 부산대학교 경제학과 출신인 그는 이 강박증으로 인해 삶 자체가 혼란스러웠다.

"강박증을 극복하는 데 마음공부가 크게 도움이 됐어요. 인지행동치료나 불안장애, 우울장애 등의 치료기법을 병행하고 있었지만 대종사께서 '망념이 침노하면 망념인 줄을 알아두면 망념이 스스로 없어진다'는 말씀은 저에게 힘이 된 법문입니다."

현재 그는 강박증에 대한 치료가 90%이상 된 상태다. 이런 치료 이면에는 만덕산 하선과 삼동원 정기훈련 등으로 끊임없이 '마음공부'에 주력한 정성이 숨어 있다. 마음을 챙기는 데에 유무념공부를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유무념공부 대조기를 꼭 차고 다닙니다. '경계에 마음을 멈추는가'를 조목 삼아 체크하고 있죠. 유무념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니 조석심고와 아침 좌선이 새롭게 챙겨지는 기분입니다. 일과 수행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고 있는 셈이지요. 이렇게 체크한 하루 유무념공부는 교화단 마음공부 책자에 기재하며 공부를 점검하고 있습니다."

공부 조목에서 보듯이 그는 강박증을 극복하기 위해 마음을 챙기고 또 챙기고 있다. "좌선을 마치고 항상 10분 정도 대적공실 법문으로 의두 연마를 합니다. 저의 의두는 '변산구곡로 석립청수성 무무역무무 비비역비비'입니다. 의두 연마에 있어 직역(直譯)이 중요합니다. 제대로 뜻을 알아야 다른 길로 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일상생활 속에서 아침에 연마한 것과 대조하는 공부를 합니다. 요즘은 좌산상사의 〈마음수업〉을 공부하며 대조하고 있습니다."

그의 공부 맥이 어디에 있는지 드러나는 부분이다. 남다른 스승에 대한 신성은 그의 내적 성장과 연관이 있다. 오롯한 법맥이 튼튼하게 자리 잡은 것이다. "큰 스승님이 살아계실 때 더 배워야 합니다. 몽둥이로 두들겨 맞을지라도 더 배우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일은 없도록 해야겠습니다. 그래서 〈대종경〉 신성품 1장의 말씀을 새기고 또 새깁니다. 저의 공부 뿌리는 '일과에서 득력하라'는 법문에 바탕해 경계에 부딪치더라도 하루를 소홀히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일과를 잘 지키고 살면 그것이 수행의 공부 줄을 잡은 것입니다."

그는 카카오톡이나 문자를 통해 친구나 친지들에게 법문을 보내고 있다. 1주일에 한번은 꼭 그렇게 한단다. 종교가 달라도 좋은 법문은 삶을 윤택하게 하고 여유를 갖게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는 온양교당 교도부회장을 맡아 교무님을 보좌하고 있다. 일원가족으로 4명의 자녀를 두고 있지만 법회 차량 운행부터 교당 건물관리까지 그의 세밀한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인터뷰가 끝날 때 쯤 교당에 수리할 일이 있다며 서두르는 것을 보면서 그의 심법을 읽을 수 있었다. 이렇듯 그와 가족들은 편안한 교당 만들기에 작은 공덕을 쌓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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