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다 보면 일이 마음 먹은 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안타까울 때가 있다. 더구나 상하좌우 인연에게 좋은 의도로 해준 일의 결과가 정작 나의 본의와 다른 결과로 나타날 때는 안타까움은 물론 당혹스러움까지 더해진다. 이때 해를 입은 상대방의 가슴속은 원망심으로 부글거리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 공부인으로서 인간 관계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 것인가?

대종사님께서는 이에 대해 "본의는 이(利)를 주고자 한 일이 혹 잘못되어 해를 주는 수도 있으므로 남을 위하여 무슨 일을 할 때에는 반드시 미리 조심해야 하고, 해를 입은 사람은 그 본의를 생각하여 감사할지언정 그 결과의 해로운 것만 들어서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고 밝히셨다.

먼저 다른 사람을 도와 줄 때는 나의 일처럼 사리연구에 바탕하여 신중히 처리하라는 말씀이다. '반드시', '미리 조심'이라는 말씀을 눈여겨 보자.

인과의 이치에 바탕하여 철저히 준비하면 반드시 성공한다. 이에 유무념 공부, 무시선 무처선 공부로 심신을 잘 관리하며 남을 돕는다면 타인을 돕는 것이 또한 내 역량을 키우는 길이 된다.

신중히 처리하기 위해서는 또 소통을 중요시 해야 한다. 소통이 없으면 상대의 생각이나 형편을 배려하지 않고 무조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만 시행하게 되어 상대를 불편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해로움을 당하는 상대는 그 결과만 보아서 원망하지 말고 오히려 그 본의를 보아서 감사하라는 것이다.

대종사님께서 귀가 아프셔서 이리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치료가 잘못되어 통증을 느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의사에게 책임을 묻든지 좋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대종사님은 의사가 환자를 치료할 때 환자를 잘 치료하려고 하는 것이지 잘못 하려고는 안 할 것이라고 생각하셨다.

종교는 법률과 달리 동기를 중요시한다. 공부인이라면 동기의 좋은 본의를 생각해서 마음의 폭을 넓히는 공부가 절실하다.

소인과 대인은 무엇이 다른가? 소인은 남이 잘하여 주는 것은 다 잊어버리고 잘못한 것만 남겨 두었다가 원수를 만들어 배은망덕을 하고, 대인은 남이 잘못한 것은 다 잊어버리고 잘한 것만 남겨두었다가 은인을 만들어서 보은한다고 하셨다.

혹, 나의 본의와 다른 결과로 인해 해로움을 당한 상대의 원망이 두려워 선행을 두려워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에 대비하여 우리 사회는 선한 사마리아인 법 조항을 두어 만약 내가 누군가를 도와주려고 했다가 그 일이 잘못되었을 때 법에서 나를 보호하는 배려도 하고 있음을 알아두자.

<전 영산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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