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감 하나만으로 넉넉했던 초기 교단

▲ 대각전 산책로에는 감나무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가을의 열림이 시작된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결실과 수확의 기쁨과 은혜를 나눌 추석도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이번 가을은 연이은 태풍의 피해로 기쁨보다는 나눔과 베품으로 함께 하는 온정이 더욱 필요할 것 같다.

이번처럼 태풍이 아니라면 매년 가을의 시골 들판은 추수를 앞두고 물결치는 황금들녘을 풍요롭고 넉넉한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그렇게 풍요롭고 넉넉한 맛을 익산성지의 추억 속에서 새겨볼 수 있다.

예비 전무출신 서원과정 중에 종종 대각전 뒤편으로 남자원로수도원에 갈 때가 있다. 그러다 보면 원로원 가는 길가에 있는 감나무에 열린 홍시가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높이에 있기도 한다.

행여 손가락이라도 닿으면 그냥 스치고 지나갈 법한데 왠지 손에 닿을 듯 안 닿게 되면 오기가 생기기 마련이다. 지금 키가 181cm로 작은 키는 아니지만 예전에는 키가 작아 고등학생 때까지는 맨 앞줄에 앉아야 했었다.

그 때의 오기때문인지 요즘도 내가 작게 느껴지는 것을 싫어하는데 왠지 감나무 가지에 열린 빨간 홍시만 보이면 손으로 잡으려 했던 마음이 초발신심처럼 거칠게 발동했다. 그리고 아주 높지 않은 곳에 있는 홍시라면 어떻게든 꼭 따고야 말았다. 그렇게 딴 홍시를 가지고 원로님께 문안 드리기도 하고 원로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딴 경우에는 동기교우들에게 주거나 혹은 방에 걸어두었다가 방원들과 함께 맛보기도 했다.

때로는 동기교우들이 감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은데 감을 따는 이유에 대해서 묻곤 하였다. 그럴 때면 "교단 초기에 어느 선진님 한 분이 너무 배고파하는 것을 본 정산종사님께서 그 선진님을 조실로 부르시어 이런저런 법담을 나누시다 벽장에서 조용히 홍시 하나를 주시어 너무 맛있고 감사하게 드셨다는 추모담을 접하고서는 자꾸 손이 간다"라고 말을 해주었다.

초기 교단을 일구신 선진님들의 이야기 속에서 교단 초기의 어려웠던 상황들과 정산종사님의 예화를 들어보면, 정산종사는 식사시간에 식사를 알리는 종이 울리는지 안울리는지 듣고서는 종이 울리지 않으면 대중이 식사를 못하고 끼니를 거르게 되는 것으로 알고 대중과 함께 식사를 하지 않으려 하시어 하는 수 없이 대중들은 굶으면서 식사종을 울려 정산종사가 식사를 하도록 하였으며, 후일 이 사실을 알게 된 정산종사는 나를 뒷방 늙은이 취급한다고 하면서 화를 내기도 했다. 그리고 밥이 나오면 대중들이 밥을 먹는지 죽을 먹는지 확인한 후에 밥을 먹었으며 행여 대중들이 죽을 먹고 있으면 같이 죽을 먹고자 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접했다.

모든 것을 다 갖추지는 않았지만 반면에 무엇 하나 아쉬울 게 없이 공부할 수 있었던 예비 전무출신들의 수학 과정 속에서 초기 교단의 어려움 속에서 꽃핀 혈심정성의 결정체가 우리들이 갖게 된 삶의 터전이자 수행하는 모습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작은 감 하나 속에도 선진님들과 스승님들의 모습이 부유하고 넘치는 것이 아닌 가난하고 배고프던 가운데 공부의 기쁨하나로 생활하셨던 그 마음을 느껴보고자 했고 그렇게 감을 따고 총부를 거닐면서 선진님들의 예화를 떠올리고 또 떠올리는 계기가 됐다. 그 덕분인지 지금까지도 선진님들에 관한 자료를 모으는데 정성을 다하고 있다.

그렇게 대각전에 있는 감나무는 매우 크고 나무의 수량도 많고 하여 많이 열리기는 하지만 낮은 곳보다 높은 곳에서 열리기 때문에 많이 따지를 못한다. 키 높이에서 닿을 만한 감이 없으면 다시 대각전에서 내려와 성탑을 향해 간다.

도중에 보게 되는 감나무들을 보면서 이 나무들은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 오늘 내가 따던 감나무의 감을 대종사님이나 정산종사님도 따거나 드셨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교전에 보면 정산종사는 감나무에 새들이 앉아서 감을 쪼아 버리게 되면 새들이 회상에 빚을 진다하여 직접 쫓으셨다 하는데, 요즘은 배고프지 않고 사치스럽지 않은 총부의 공양 덕에 누구 하나 굶지 않기 때문에 그 때의 배고픔은 모르지만 그 때의 정신만은 잊지 않도록 더욱 정진하고 적공해야 됨을 스스로 일깨우곤 한다.

때로는 도반과 더불어 감을 따는데, 그럴 때면 자연스레 성지순례를 하게 되어 성탑, 영모전, 조실 등을 참배하면서 감을 따게 된다. 그렇게 감을 따면서 구석 구석을 다니다 보면 운 좋게 나무 밑에서 살짝 고개를 내밀고 있는 영지버섯을 발견하기도 하고, 그리 즐겨 먹지는 않지만 도반과 함께 딴 감을 나누어 먹으면서 알고 있는 교리, 교사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낸 추억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저녁시간이 되면 감 따기로 시작한 성지순례가 끝나고 딴 감을 가지고 식당으로 향한다. 식당을 가며 마주치는 도반들에게 감을 주면서 배고프고 부족했지만 마음만은 풍요롭고 널리 세상을 구원하려던 선진님들의 서원과 정신을 새기면서 도반들과의 정을 느끼고자 했다. 언제나 열려있는 우리 마음의 고향 익산성지, 이곳에 주말이면 많은 교도들과 방문객들이 가족단위로 이곳을 찾아 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대각전, 성탑, 영모전을 참배하면서 엄마 아빠가 들려주는 대종사님의 이야기 그리고 구석 구석 열려있는 앵두나무, 은행나무, 감나무 등 각종 과실수와 야생화를 보면서 엄마 아빠의 어릴 적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보릿고개라 불리던 어려운 시절을 넘기던 엄마 아빠의 어린 시절만큼 원불교에도 어려운 시절이 있었지만 그것을 참고 노력하고 공부하면서 우리가 다니는 교당과 이곳 총부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이야기 해주는 모습을 그려보고 싶다.

필자가 중학교때는 잠시 교당을 다니지 않다. 그 가운데 친척집에 인사차 가게 되면 교회다니는 고모, 삼촌 등이 나를 앉혀놓고 구원과 천국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 주었고 자연스럽게 나도 교회를 다닌 적이 있다. 하지만 교당에 다니면서는 원불교에 대한 이야기를 교무님 외에 다른 분께는 들어본 기억이 별로 없다.

우리들도 누구에게나 언제나 초기 교단 대종사 이하 역대 선진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작은 감 하나에도 정산종사의 자비심이 서려있고 그때의 그 감나무들이 지금도 총부를 수호하고 있으며, 총부 구석구석에는 지금도 대종사, 정산종사의 성혼이 어려있는 건물과 유물이 가득하다.

이런 곳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언제나 대종사, 정산종사를 느끼고 갔으면 좋겠다.

<원불교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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