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달래주는 홍도· 흑산도 '힐링 여행'

며칠 전부터 읽기 시작한 책은 마음의 힘에 관한 내용이었다. 어떻게 마음이 몸에 영향을 줘 몸의 병을 고칠 수 있을까? 이미지 힐링과 믿음, 긍정적 사고. 이 책을 통해 각인된 몇 가지 단어들이 내 가슴 한 켠에 자리했다. 그리고 이번 뱃길 여행에 그것들도 함께 선박에 실려졌다. 섬과 섬 사이를 헤치는 다도해 뱃길은 어쩌면 내 몸을 위한 '힐링 여행'이 되어줄 것만 같았다. 숱한 섬이 올망졸망 떠 있는 바다는 아픔과 시름까지도 다 끌어안을 만큼 넉넉하고 평화롭게 보였다.
▲ 해질녘 섬 전체가 붉게 보이는 홍도.
천년의 신비 간직한 홍도

이 섬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노래 가사가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노래 '홍도야 울지 마라'. 홍도라는 섬과는 무관한 노래지만 기분 좋게 흥얼거려진다. '오빠가 있다'며 '나갈 길을 지켜라'는 듬직한 말 한마디는 그대로가 여인에게 믿음이자 희망이었을 터. 세상이 '구름'이라 해도 '오빠'의 사랑 앞에 구름을 거둬두는 바람이 불어오리라. 그 확연한 바람이 내 마음에도 불어온다.

목포항에서 홍도까지의 거리는 112㎞. 목포항을 출발한 쾌속선이 도초·비금도와 흑산도를 거쳐서 홍도에 도착하려면 약 2시간30분 동안 쪽빛 다도해를 질주해야 한다. 출렁이는 바닷길의 '진한 맛'을 아는 터라 긴장하기도 잠시, 날씨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이다.

해질녘에 섬 전체가 붉게 보인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홍도는 홍갈색을 띤 규암질의 바위로 이뤄져 있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와의 조화로 남해의 소금강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바람이 없는 날에는 바다 속 10m가 넘게 들여다보일 정도로 물이 맑고 투명하다고 한다.

오랜 세월의 풍파로 형언할 수 없는 절경을 이루고 있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들의 절경, 그래서일까. 홍도는 천연기념물 제170호와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의 채취와 반출도 금지되어 있다.

몸도 마음도 가뿐히 홍도항에 도착해 유람선 일주에 나섰다. 홍도에는 돌, 바람, 파도가 합작해서 빚은 33곳의 절경이 있다. 홍도 여행의 으뜸으로 꼽히는 유람선 일주는 우리나라 최고의 해안 절경을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다. 이 중 대표 바위가 거북바위와 기둥바위, 남문바위였다. 홍도10경 중 9경으로 꼽히는 거북바위는 이름처럼 홍도의 수호신인 거북이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매년 정월 초사흗날 당제를 지내 새로운 복을 가져오도록 바다에 띄워 수궁에 보내고 있는데, 이 거북이 용신을 맞이하고 악귀를 쫓아 섬사람들의 안전을 기원한다고 한다. 홍도 전체를 받치고 있다는 기둥바위는 주민들 사이에서 이 기둥이 무너지면 큰 변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을 정도로 홍도를 지탱하고 있는 바위다.

그밖에 남문바위와 공작새바위, 만물상바위 등 억겁의 세월 동안 바람과 파도가 만들어낸 신비로운 기암괴석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유람선 선장과 안내원의 배려도 세심하고 노련하다. 그토록 많은 바위에 얽힌 전설들을 동화처럼 재미나게 풀어냈다. 남문바위나 독립문바위 부근에서는 잠시 배를 세우고 기념촬영할 수 있도록 안내했다. 상업적인 수단 또한 밉지 않게 노련했다. 그 밉지 않은 노련함 덕에, 사람들은 어느 한 시절 자신의 추억 한 장을 유람선에서 기분 좋은 가격에 살 수 있었다. '다도해의 진주' 홍도에서 사람들은 그렇게 일상의 고단함을 잊고 있었다.
▲ 홍도에는 돌, 바람, 파도가 만들어 낸 33곳의 절경이 있다.
열두 굽이의 흑산도 용고개

목포항과 홍도 사이를 오가는 여객선들은 어김없이 흑산도를 경유한다. 흑산도는 '숲과 바다가 푸르다 못해 검게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흑산도에서 배가 가장 먼저 닿는 곳은 예리항. 예리항은 흑산도 여행자들에게 관문으로 통한다. 서남해안 제일의 고등어 파시가 열리던 곳으로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열두 굽이 도로는 흑산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꼽힌다. 예리항에서 상라봉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특히 사방으로 시야가 훤히 트여서 해와 달이 뜨고 지는 광경까지도 감상할 수 있는 상라산 전망대는 다도해 최고의 천연 전망대였다. 상라산으로 오르는 열두 굽이의 용고개는 굴곡이 꽤 심했다. 하지만 그 빼어난 풍경 덕분에 사진작가들의 촬영 포인트로 더 할 나위 없는 명소였다.

흑산도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형님이자 어류도감 '자산어보'를 남긴 정약전, 구한말 대쪽 같은 항일정신을 보여준 면암 최익현 등이 머물렀던 유배지이기도 했다.

지그재그로 연결되어 있는 독특한 지형, 그 길을 따라 가다 보면 상라산성과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 등 산재해 있는 문화유적을 만날 수 있다. 흑산도 할머니들이 직접 누룩을 띄워서 만든 달달한 보리막걸리를 맛 볼 수 있는 곳도 이 길 끝에 있었다. 그 진한 황토색 막걸리 맛이 여전히 기억 속에 삼삼하다.

다도해엔 쉽게 만날 수 없는 특별한 풍경이 있었다. 그곳에선 사람도, 배도, 항구도 모두 활기가 넘쳐 있었다. 이곳이 마음이 몸을 치료하는 곳, 천혜의 힐링 장소가 아닐까. 다도해의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분명, 일상의 고단함을 위로받을 수 있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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