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의 신시나 창가는 그다지 내세울 처지가 못 됩니다. 그건 신시나 창가가 가진 문학사적 한계 때문이기도 하지요. 시조나 하나 볼까요?

이내 마음 하늘이요 이내 몸은 땅이로다
하늘과 땅 그 가운데 무궁보화 실었으니
아마도 몸과 마음이 다 진토록 도덕의 종사

그럴 듯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마음은 하늘, 몸은 땅' 같은 문구는 당대의 관행구였던 듯 그리 대견한 소리는 아닙니다. 1924년에 이어 1926년, 경산은 이춘풍이 지키고 있는 변산 석두암에 찾아가 다음 시를 짓습니다.

初見山山水水在(초견산산수수재) 처음 보았을 때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었는데
重來山水總多情(중래산수총다정) 다시 오니 산과 물이 모두 다정하다
石頭夢覺三更月(석두몽각삼경월) 석두암에서 꿈을 깨니 삼경에 달이 밝다
萬念自消只一情(만념자소지일정) 만 가지 생각 스스로 사라지고 다만 한 마음뿐이네

음풍농월이 아니죠. 이 시를 보면 경산의 도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한밤중 석두암에서 보는 밝은 달, 집히는 것이 없습니까?

한시와 더불어 경산문학의 강점은 가사에서 드러납니다. 1932년, 일본 대판(오사카)에서 '출가곡'을 지었습니다. 조선을 떠나 일본에 가는 것을 출가에 견주어 쓴 가사 작품입니다. 62구로 되어 있는데, 이국풍물과 함께 각별한 수도 발심이 흥미를 자극합니다. 첫머리는 이렇습니다.

출가곡을 불러 볼까/재가곡을 불러 볼까
출가일곡 불러 보세/좋을시고 좋을시고
천지순환 이때로서/뇌급만방 되어 있고
사생 중에 사람 되어/배워 볼 일 무엇인고

〈회보〉 45호(1938.6)에는 146구로 비교적 긴 가사 '처세가'가 실립니다. 원불교 교리의 핵심 중 수행문의 삼학을 조리 있게 정리한 전형적 종교가사입니다. 구성에 완성도가 높은 데다가 삼학 교리 하나를 이 만큼 완벽하고 자상하게 정리한 가사는 전례가 없습니다.

경산은 또 열반 후 유작으로 '토아옹타령'이란 가사를 남겼습니다. 불사를 위해 교당에 벙어리저금통을 두고 헌금을 받는 사연을 노래한 것입니다. 해학과 더불어 공심을 자극하는 썩 매력적인 작품이죠. 맛보기로 일부를 소개합니다.

당신네는 하루 세 때/잊지 않고 꼭 먹어도
목마르네 배고프네/못 살겠다 하면서도
이내 벙어리 팔자는/못 먹고서 굶은 지가
우금 몇 날 몇 밤인가/애고 답답 설움이야
문전걸식 하자 한들/수족구비 못 되었고
야간투식 하자 한들/이내 체면 안 되었고
영영 굶고 마자 한들/나의 본분 아니로다
어찌 하면 좋을손가/애고 답답 설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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