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그대에게 감정과 건강을 묻다

▲ 고객 만족을 위한 미소를 훈련받는 여 승무원.
▲ 자신의 감정과 다른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서비스직 노동자.
우리의 산업화 과정을 살펴보면 농업 어업의 1차 산업에서, 광업을 필두로 한 제조업의 2차 산업구조로 변화되어 왔다. 제조업에서 크게 대두되던 문제는 근로자의 건강이었다. 기계에 신체가 절단되는 부상, 제대로 갖추어지지 못한 보호구, 해로운 화학물질 방출 같은 열악한 노동환경은 끊임없는 산업재해를 산출했다.

이런 이유로 각종 제도는 제조업 노동자를 기준으로 해 그들을 보호하는 작업환경측정과 검진 등이 이뤄져 왔다. 아직까지 산업안전보건법이나 산재보험은 제조업 노동자를 주 대상으로 상정하고 있다.

하지만 서비스업으로 대거 산업구조가 변화된 지금, 제도는 잘 발맞춰오고 있나? 서비스업은 그 분야도 다양해 유통업, 할인점, 백화점, 레스토랑, 호텔 등에 종사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교사, 간호사, 공공부문 종사 등까지 이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이렇듯 서비스직의 양태는 다양하지만 그 주요 업무는 하나같이 고객 즉 '인간'이 노동의 대상이라는 것이 공통점이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의 관점에서 보면 '고객과의 관계가 노동과정'이 되고 이 과정 속에서 많은 산업재해적 상황이 발생되고 있다.

기업 간의 경쟁이 점차 치열해지고 각 서비스 기업이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고객과 직접 대면하는 판매원들이나 서비스 관련 종사자들의 태도와 이미지, 친절도 등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기업은 생산성 향상을 위해 서비스직 노동자들에게 보다 까다롭게 친절함을 요구하게 됐다. 노동자의 서비스 수준이 곧바로 고객들의 구매결정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요구는 점차 증가되고 있다. 이렇게 기업이 기대규범을 수용하고 대응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감정 노동(emotional labor)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감정노동이라는 용어는 미국의 사회학자 혹쉴드(Hochschild)가 1983년 〈관리된 심장 The Managed Heart〉이라는 책에서 미국 사회의 산업구조의 변화와 새롭게 부각되는 노동과정의 특성에 관해서 서술하면서 나온 개념이다. 혹쉴드는 좋아하고, 싫어하고, 슬프고, 화나는 매우 개인적인 감정이 기업에 의해 관리되는 현실을 직시했다. 이 책의 부제가 '감정의 상품화'로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감정이 자본주의 사회의 이윤 추구를 위해 기업이라는 조직에서 요구하는 집단적 감정(collective emotion)으로 변형되며 서비스직 종사자들이 가져야 하는 집단적 감정은 조직이 바람직하게 여겨 노동자에게 강요된 결과라고 봤다. 즉 서비스 노동을 할 때는 개인이 상황이나 고객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던지 상관없이 기업의 이윤을 위해 사적인 감정은 누르고, 최대한 '고객은 왕이다'는 명제를 실천하게끔 됐다.
▲ 폭언이나 성희롱적인 발언을 해도 고객을 위한 감정노동을 해야 하는 콜센터 노동자.
혹쉴드가 분석했던 감정노동의 사례에서도 미국의 항공사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던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시장을 확보하기 위한 선봉으로 친절광고를 시도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승무원의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남부의 백인 여성이 '아름답고' '영특한' 분위기가 나는 차림새를 하고 '우아한' 매너와 '따스한' 개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상을 전달했다. 성적(sexual)인 것이 아닌 '호의적'이고 감정이입된 광고 미소의 중요성은 승객의 기대를 부풀게 하거나 실망감을 증가시킬 수 있는 전략이 됐다.

하지만 노동자의 감정이 조직이 요구하는 감정표현과 일치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서비스직 노동자를 채용할 때부터 면접을 통해 조직에서 요구하는 감정을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성격의 사람을 선발하게 된다. 일단 노동자가 선발되면, 조직은 다양한 기법을 통해 어떻게 조직의 감정 표현 규범을 수행해야 하는지를 교육하게 된다. 여기에는 공식 교육훈련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선배 사원의 행동을 관찰하고 모방하는 것, 시행착오 등이 포함되며 이를 통해서 감정 노동 표현 규범에 대한 사회화가 이루어지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쳤다고 해서 늘 요구되는 감정만을 고객에게 표현하지는 않기 때문에 조직은 보상 및 처벌을 통해서 감정 노동에 관한 관리를 더욱 탄탄히 하고자 한다. 대표적인 예가 위장고객 등을 통해 모니터 제도를 실시함으로써 업무 수행과정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위장고객의 존재를 의식하게 만드는 것이다. 진짜 고객들도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하는데 사장실과 직통되는 전화개설, 소비자 중역제도, 고객 소리함 제도 등이 통제 기능을 한다. 더 나아가 고객은 회사의 인터넷 홈페이지 등을 이용하여 노동자의 서비스를 평가하는 글을 올리기도 하는데 이러한 수단들은 불특정 다수의 고객을 노동자의 감정표출 행위에 대한 감시자로 만드는 셈이다.

이렇게 모니터된 결과들은 노동자들에게 보상과 처벌의 기준이 되기도 하는데 한 외식업체에서 매달 매니저들이 노동자의 유니폼 착용상태, 스마일, 서비스, 위생 등에 대해 평가한 자료를 3개월에 한 번씩 종합해 시급인상시에 반영하는 것과 고객평가들을 종합하여 가장 평점이 우수한 사원에게 한 달에 한 번씩 모범사원 상장과 상금을 수여하는 것 등이 그 예이다. 필자가 수행한 연구조사(2006)에 따르면 서비스업 노동자의 감정노동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았을 때 시말서, 공개사과, 경고, 감봉 등 다양한 벌칙이 부과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조직의 관리자들은 감정 노동의 통제자로서의 역할을 하는데 개방된 매장구조 덕분에 언제 어느 장소에서든 서비스직 노동자의 행위를 감시할 수 있게 됐다. 이로 인해 노동자들은 고객에 대한 접객 서비스 제공시에 관리자의 시선을 항상 의식할 수밖에 없게 됐다. 서비스를 매뉴얼화 하여 시행한 한 백화점 노동자는 "저희는 본사에서 하는게 되게 심해서 노란봉투가 날라와요. 그거 잘못하면 월급 안 올라요. 점수 잘 받으면 월급 올라가냐 그건 아니에요. 그건 당연한 거예요. 두 번 걸리면 그만 둘 생각해야 돼요. 두 번째 걸리면, 모두한테 낙인 찍혀요. 무언의 압력이 오죠. 점수도 공개돼요. 1등부터 몇 백 등까지, 정말 심각하죠. 다 싫어하죠"라고 진술했다.

이렇다보니 오래 서 있기, 장시간 노동, 휴식시간 부족, 답답한 실내 공기 등의 요인으로 감정노동 서비스직 노동자들은 건강에 위협을 받고 있다.

감정노동을 많이 하는 노동자는 우울증 증가, 자기비하, 대인기피증, 심각한 탈진, 암발생 증가, 결근 등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이미 연구자들이 밝힌 바 있다. 게다가 대다수의 서비스직은 여성이며 비정규직으로 우리 사회의 약자에 속한다. 따라서 서비스직 노동자의 감정노동을 경감하기 위해서는 정말 우리사회에 고객과 노동자 모두에게 이로운 '적정' 서비스는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 또한 과도한 감정노동으로 문제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안전보건을 책임지고 있는 기업주는 어떤 시스템을 갖추어야 하는지에 대한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노동자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 역시 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
감정의 상품화로

기업에 의해 조종돼

서비스직 노동자의

건강과 정서를 위해

제도적 보호 필요
"
▲ 정진주 / 사회건강연구소 소장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