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다가오면 정든 사람들이 있는 고향에 갈 준비에 일손을 서두른다. 명절이 아니라도 언제나 마음만 챙기면 갈 수 있는 부처님의 고향은 어디일까?

그곳은 본래 면목, 본래 마음 자리이다. 이 마음자리를 못 찾으면 정작 고향은 못가고 주변에서 서성대다 가버리는 떠돌이 인생이 되어 버리고 만다.

마음 고향을 못 가게 하는 요인중에 하나가 상(相)이다. 인도품 17장 말씀을 보면 달마(達磨)께서는 "응용 무념(應用無念)을 덕이라 한다" 하셨고, 노자(老子)께서는 "상덕(上德)은 덕이라는 상이 없다"고 하셨다. '응용 무념을 한다'함은 본래의 맑고 밝고 바른 생각을 내서 정당한 일을 그대로 행하는 것이고, '상덕은 덕이라는 상이 없다'는 것은 생각을 통해 선악을 구분해서 나오는 덕이라면 그 덕 속에는 이미 '선(善)'이라는 상을 지니고 있어서 '참다운 덕'이라고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금강경의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은 주함이 없는 공부를 하자는 것이다. 인간관계를 갖는데도 주함이 없이, 물건을 접응할 때도 주함이 없이, 보시를 할 때도 주함이 없이 하자는 것이다.

이웃집 사람을 도와주니 본인에게 복이 되더라는 이공주 선진님의 감상을 들으시고, 대종사님께서 "복을 지으면 받아지는 이치는 알았으나 잘못하면 그 복이 죄로 화하는 이치도 알아야 한다"고 일깨워 주셨다.

"범상한 사람들은 남에게 약간의 은혜를 베풀어 놓고는 그 관념과 상을 놓지 못하므로 은혜 입은 사람이 혹 그 은혜를 몰라 주거나 배은 망덕(背恩忘德)을 할 때에는 그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몇 배나 더하여 지극히 사랑하는 데에서 도리어 지극한 미움을 일어내고, 작은 은혜로 도리어 큰 원수를 맺게 된다"고 하셨다.

착함만 가지고는 참 공부인이 될 수 없다. 선을 행하고는 본래 고향, 본래 마음자리를 회복하고 그곳에 안주할 줄 알아야 한다. 허공과 같이 마음을 비우는 공부와 마음을 무한히 키워나가는 공부를 해야 상없는 덕을 생산하고 큰 복을 지을 수 있다.

정산종사께서 무궁한 복락의 원천은 안으로는 삼대력이고 밖으로는 무념공덕이라 하셨다. 또 "사람이 다 자식을 기르되, 부모에게 상이 없으므로 큰 은혜가 되듯, 복을 짓되 상이 없어야 큰 공덕이 되나니라"고 말씀하셨다.

무상보시의 표본이요 무상행의 근본인 천지와 부모님의 덕을 체받아 무상보시행을 해야 겠다. 세상을 훈훈하고 따뜻하게 감싸 주는 무념보시 공부인들께 다시 한번 감사를 전한다.

<전 영산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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