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감각으로 곤충생활사 밝혀

▲ 곤충생태연구가 성기수 씨. 곤충을 찍기 위해 지인들과 직접 만든 렌즈와 후레쉬를 카메라에 장착했다.
▲ 그는 곤충에 최대한 접근해 사진을 찍는다. 사진은 물잠자리가 달뿌리풀에 산란하는 모습.
양평군 청운면 도원리 숲에는 다양한 곤충들이 모여 산다.

광대노린재가 산초 나무를 거닐다 떨어졌고, 옆에서는 뚱보기생파리가 꽃향기에 취해 있다. 천혜의 자연 조건 속에 펼쳐진 아늑하고 한적한 풍경이다. 하지만 뚱보기생파리가 노린재의 몸속에서 체액을 빨아먹고 성충이 되는 걸 알게 되는 순간 그때도 마냥 아늑할 수 있을까?

이곳은 그들에게 삶의 치열한 격전지이다. '금물산하늘소 캠프장'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이 쇠살모사를 잡아왔다. 독성분을 지녔기에 위험했으리라. 자세히 보니 쇠살모사 턱에는 이상이 있었다. 나뭇가지에 걸친 뱀을 캠프지기 표도연 씨가 재빠르게 건네 받으며 위험한 상황이 종료됐다. 그때 그 옆에서 차분히 지켜보던 성기수(49)씨가 한 마디 거든다.

"쇠살모사 목 뒷편에 파리가 이미 알을 까놓은 것은 어제 저녁쯤으로 보입니다. 아래턱이 다친 걸로 보아 고양이의 소행임이 틀림없죠."

곤충생태연구가인 그는 차분히 쇠살모사를 격리시켰다. 인터넷에서는 이미 '반디'라는 닉네임으로 알려진 그는 다급하고 들뜨지 않은 대처에 뱀과 아이들을 고려한 듯한 세심함이 느껴졌다.

자연의 생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그의 뒤로 호기심 가득한 아이들이 뒤따랐다. 오프라인에서는 '한국의 파브르'로 유명한 그와의 첫 만남은 남달랐다. 대뜸 그가''감각이 매우 예민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의 말에 놀랐지만 곤충의 습성을 이해하려는 오랜 과정 속에서 감각이 발달됐음을 곧 눈치 챌 수 있었다.

"처음부터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태어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은 나무 밑의 냄새를 맡기만 해도 땅 속에 매미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죠. 방금 보았던 쇠살모사에게서도 아카시아 냄새가 났습니다. 감각은 어른보다 아이들에게서 더 뛰어남을 알 수 있어요. 그러기에 유년기에 자연 경험이 소중합니다. 저 역시 그랬으니까요."

그는 어렸을 적부터 끊임없이 관찰하던 버릇이 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엔 두 개의 일기장을 사용했는데 그 중 하나는 학교 제출용, 또 하나는 기간과 분량 및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자신만의 일명 '관찰일기'였다. 여기에는 탐구한 대상에 대한 그림도 첨부됐다. 그는 2004년 사진기로 작업을 대체하기 전까지는 세밀화로 대상을 담아냈다.

"곤충 세밀화를 그리다보면 그들의 털 하나하나까지 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생태사진을 찍는 일도 마찬가지죠. 무턱대고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좋아하는 시간과 온도, 바람까지 일일이 체크하고 숨죽이며 기다립니다. 저의 사진은 심지어 곤충의 1cm 앞까지 다가가 촬영이 이뤄지기도 하죠. 경계심이 생기지 않도록 안심을 준 상태에서 찍기 때문에 제 사진에는 곤충의 인위적인 흔적이 없습니다."

그가 세밀화에서 사진으로 넘어간 사연의 이면에는 웃지 못 할 에피소드가 있다. 곤충 동호회에서 그는 여태껏 살펴온 곤충의 자세한 생태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모두 책에서 본 것을 이야기하는 하는 정도로 치부했다. 이런 계기로 인해 그는 돌연 사진기를 구입했다. 그때 처음 찍은 것이 바로 '도토리 거위벌레'다.

인터뷰 당시에도 그의 책상에는 이번 태풍 때문에 떨어진 듯한 도토리가 있었다. 도토리 거위벌레는 도토리에 알을 낳고는 그 나뭇가지를 끊어내는데 그 이유는 애벌레를 살기 알맞은 습도가 갖춰진 지상으로 내려 보내기 위함이다.
▲ 도토리 거위벌레 애벌레가 들어 있는 도토리 나뭇가지.
그는 도토리거위벌레의 이런 습성을 미리 알고 나뭇가지를 자르는 순간을 사진에 담아낸 것이다. 곤충 동호회 멤버들에게 이 사진과 몇 번의 비슷한 수위의 생태사진을 보여주자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했다. 차츰 곤충생태연구가로서 입소문을 얻어갈 때 쯤 그는 TV 다큐멘터리를 감수하게 됐다.

"2008년 MBC 스페셜 '물의 여행'과 '유혹의 기술'은 주체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제작팀은 곤충들을 언제 어떻게 촬영해야 될지에 대한 몇 개월간의 계획서를 써주길 원했죠. 곤충을 직접 촬영하고 그들의 생태를 알기 위해선 대학교수의 학문적인 지식이 아니라 필드에서 직접 뛰며 곤충과 같이 호흡하는 저 같은 사람의 세세한 노하우가 필요했던 겁니다. 이 다큐는 국내의 반응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수준 높은 다큐로 인정받아 일본과 유럽 등지에 수출됐죠. BBC나 NHK에서 다큐를 수입해서 보던 과거를 생각한다면 놀라운 성적입니다."

지금껏 그가 진행해 온 도서작업의 내용을 보면 프랑스의 곤충생태학자 파브르와 비견될만 하다. 그는 분류학자처럼 곤충을 바늘로 꼽아 보관하거나 해부학자처럼 칼로 해부하고 현미경으로 바라보는 작업을 꺼려했다. 대신 오랜 관찰을 통해 그들의 행동 양태의 원인을 분석해 심리까지 파악하려는 모습은 파브르의 지향점과 같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가 '곤충기' 축약 영문판을 번역한 것만 봐도 사숙하는 인물로 파브르를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파브르는 글과 그림으로, 그는 글은 물론이고 그림 대신 사진으로 더욱 실체적인 이해를 높였다는 점이다.

"사실 다큐멘터리는 저의 의도와 조금씩 빗나가거나 모자랄 때가 많았습니다. 앞으로는 나의 작업을 동영상, 즉 다큐로 담는데 좀 더 주도적인 역할을 해나갈 예정입니다. 또한 제가 석사 학위를 받은 고분자물리학을 최대한 살려 실증하고 싶은 부분도 있습니다. 그것은 곤충과 식물의 화학적인 관계망이죠. 새 잎사귀가 나오게 되면 분출되는 화학적인 무엇이 애벌레를 깨어나게 만들어 순한 잎만을 먹게 만든다거나, 곤충을 유인하는 식물의 유혹 같은 것들을 화학의 키로 풀어보고 싶습니다."

그의 신념은 이미 파브르에서 조금씩 진화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집 앞에 설치된 하얀 막도 다큐 촬영팀들이 경과를 지켜보기 위해 남기고 간 세트라고 했다.

그가 세상에 공개하는 곤충들은 그의 손에서 한 살이를 다 거친 녀석들이다. 부화에서 애벌레, 성충, 짝짓기, 죽음까지 한 사이클을 완벽히 이해하고 나서야 일반에게 공개하는 신중함을 내비쳤다.

지금 그는 도원리, 깊숙한 산골 '흑천'의 발원지 그 끝에서 숲의 일원이 되어가고 있다. 이곳에 들어온 것도 곤충을 곁에 두고 관찰하기 위해서다. 들어온 지 몇 개월 되지 않았다고 소개한 숲에서조차 그는 마냥 편안해 보였다.

창틈으로는 왕깡충거미며 문 앞에 산다는 장지뱀(도마뱀), 햇빛을 쐬러 마당에 오는 나비들, 같은 시간이 되면 떠놓은 물을 먹고 가는 새, 일부러 먹다 남긴 복숭아에서 단물을 먹고 가는 벌들도 벌써 이웃이 된 듯 하다. 그는 온몸의 감각을 활짝 열고 아직 보내지 않은 이곳의 가을과 겨울에 대해 벌써부터 기대를 걸고 있었다.

사진과 다큐멘터리에 담긴

그 동안의 탐구 흔적들

대내외에서 인정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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