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와서 토플시험(외국인 영어능력 검정시험)을 봤다. 점수대 별로 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의 수준을 상세히 설명해 놓은 표가 있었다.

그 표를 보면 현재의 내 수준과 시험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가 등을 알 수 있다. 시험 준비를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낯선 곳을 여행할 때나 산에 오를 때에도 나의 현 위치와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알려주는 지도와 이정표는 필수다.

수행을 해 나갈 때도 마찬가지다. 나의 수행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무엇이 부족한지를 알려주는 표와 같은 것이 바로 '법위등급'이다. 삼학으로 구분해서 표준을 제시하고 있는 법위등급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원불교 수행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법위를 등급으로 나누어 평가하는 것은 무념보시를 강조하는 불가의 전통과 맞지 않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다. 공부와 사업을 하는 당사자들이야 마땅히 무념으로 해야겠지만 공덕을 존숭(尊崇)하고 표창할 처지에서는 또한 사정(司正)을 분명히 해야 한다.(교단품 35장)

법위사정에 대해 논란이 많다. "받을 때가 되었는데 왜 법호를 안주냐"고도 말하고, "자격이 없다"며 이미 나온 법호를 거부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공부의 등위와 사업의 등급에 공정을 기하고자 총부에서는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최대한 심사숙고를 했겠지만, 사람의 일이라 어찌 착오가 없겠는가!

교단의 평가를 무시해서는 안 되겠지만, 참다운 사정은 호리도 틀림없는 진리에 맡기고 교단(사람)의 평가는 앞으로 적공에 분발한 대중만 삼을 일이다.(경륜편 9장)

진리계에서는 인가를 받았는데 교단에서 인정을 안 해준다면 문제될 것이 없고, 진리계에서는 인가를 받지 못했는데 교단에서 과분하게 평가가 되었다면 그에 걸맞은 실력을 갖추기에 노력하면 그만이다. 법호를 늦게 주었다고 서운해 하는 것이나, 이미 주어진 법호를 거절하는 것이나 근본에 있어서는 다를 것이 없다.

원불교 교도는 입교와 동시에 앞으로 여래가 돼야 할 의무와 권리가 부여되어 있다. 대각여래위는 '동하여도 분별에 착이 없고 정하여도 분별이 절도에 맞는 사람'의 위이다. 동하여도(성성) 동하는 바(망상)가 없고 정하여도(적적) 정하는 바(무기)가 없이 그 마음을 작용하는 것이다.

이것이 '시끄러운 데 처해도 마음이 요란하지 아니하고 욕심 경계를 대하여도 마음이 동하지 아니한 참 선과 참 정(定)'이며, '목석같은 부동행이 아닌 동중부동행'(육조대사)이다.

<미주서부훈련원>

※ 다음주 부터는 삼동연수원 길도훈 교무가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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