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물질등록평가법 확대로 건강권 확보 필요

▲ 구미 불산가스 누출로 인해 시민들이 건강검진을 받고 있다.
▲ 구미 국가산업단지 4공단 내 화학공장에서 발생한 폭발사고 진압에 나선 소방대원.
"불산사고로 구미산단 근로자 1,359명, 차량 1,126대, 조경수 17,096그루 피해… 지역 주민뿐 아니라 구미산단 4단지 피해 심각성 드러나" 국회의원 심상정 의원이 10월7일 배포한 보도자료 내용이다.

구미에서 발생한 불산사고로 이미 4명이 숨졌으며, 지역주민들의 불안감만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곧 구미는 정부에 의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다. 담당부처인 환경부에는 비상이 걸렸다.

심상정 의원실에 따르면 불산 노출사고로 인근 공단지역의 피해도 광범위하다고 전했다. 총 177억 원 가량의 피해가 신고 됐고, 노동자 1,359명이 고통을 호소하거나 치료를 받고 있다. 또한 49개사 공장 건물·벽·유리 파손, 37개사 설비·생산품 피해, 차량 1,126대 피해, 나무 17,096 그루 훼손됐다. 환경부에 의하면, 9월 27일 사고이후 10월6일까지 지역주민 및 근로자 2,497명이 건강검진을 받았고, 주로 눈이나 코, 목 등에 자극이나 피부발진 증상이 나타났다.

'불산'이라 불화수소를 일컫는 말로, 흡입할 경우 폐 손상과 함께 저칼슘혈증, 전신독성 등의 합병증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유해화학물질이다. 초기에는 감기 정도의 증상을 나타내지만 점차 폐 손상이 이어지는 치명적인 독성물질인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불산 뿐 아니라 벤젠, 톨루엔, 포름알데이드, 다이옥신 등 광범위한 유해 화학물질이 상존해 있다. 이는 비닐 같은 플라스틱 계통은 물론이거니와 의류, 화장품, 식기, 학용품에 이르기까지 생활 전반에 쓰이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이다. 여기에는 발암물질과 각종 독성 화학물질이 남아 인체에 다양한 질병을 야기 시키고 있다.

또한 특정 독성물질은 인체에 치명적 해를 일으켜 죽음에 이르게도 한다. 지난해 살균제를 가습기에 사용해 그로인한 사망 인원이 52명에 이른다. 환경단체에 접수된 신고 건수만 해도 174건이며, 전체적으로 220여 건의 피해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가습기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것은 살균제 때문이다. 가습기를 청소하기 위해 살균제를 삽입하는데, 문제는 이 같은 살균제가 액정상태일 때는 인체에 해를 입히지 않지만 미세한 분말형태로 직접 폐로 흡수될 경우 중대한 폐 손상을 입힌다는 사실이다. 이를 미처 깨닫지 못한 시민들이 살균제(질병관리본부에 의해 밝혀진 원인물질 PHMG, PGH)와 함께 가습기를 틀어 사망까지 이르게 됐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 같은 화학물질을 규제할 법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큰 맹점을 가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기존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 따른 유독물 관리 위주에 '유해화학물질'로 분류되는 540종(특정유독물 112종, 취급제한 54종 등),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른 대기 관리 체계별 대상물질로 대기오염물질(디클로로에탄 등 61종), 환경기준규제물질(7종), 특정대기유해물질(35종), 배출허용기준물질(26종), 지정악취물질(22종), VOC지정고시물질(27종), 기후생태계변화유발물질(7종), 우선관리HAPs(48종) 등이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유해화학물질 외에도 유독한 화학물질이 더 많다. 우리나라에서 취급되는 화학물질은 5만여 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 해에 신규로 발생하는 화학물질만 수천 종이다. 그나마 신규로 발생하는 화학물질에 대해서는 유해성 심사를 실시하고 있지만, 기존 화학물질에 대한 관리는 미흡한 실정이다.

환경부(국립환경연구원)가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년간 만19세 이상 6,000명을 대상으로 한 국민환경보건조사(납, 망간, 수은, 카드뮴, 비소, 휘발성유기화합물 등 16종)를 시행한 결과, 조사대상자 중 70% 이상에서 화학물질 16종이 모두 검출된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혈중에서는 수은·납 등의 중금속이, 소변 중에는 카드뮴, 비소 등의 중금속이 미국평균에 비하여 월등하게 많이 검출됐다.

혈액 중 유해화학물질 농도는 납(99% 검출, 한국 1.77μg/dL, 미국 1.38μg/dL), 망간(100% 검출, 한국 1.09μg/dL, 미국 0μg/dL), 수은(100% 검출, 한국 3.08μg/L, 미국 0.94μg/L), 소변에서는 수은(93% 검출, 한국 0.53μg/L, 미국 0.48μg/L), 카드뮴(100% 검출, 한국 0.58μg/L, 미국 0.23μg/L) 비소(100% 검출, 한국 35.0μg/L, 미국 8.44μg/L) 등으로 조사됐다.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제품에 대해서도 유해화학물질의 누출 빈도가 잦은 것으로 드러났다. 환경부가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위생용품·화장품·학용품 등 80개 품목에 대해서도 그림물감에서는 납이, 색연필에서는 카드뮴이, 지우개는 바튬, 세탁용세제는 포름알데이드 등의 발암물질 또는 중금속이 검출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화학물질의 범람에 대한 해결책으로 환경부가 제시하고 있는 것은 '화학물질등록및 평가에 관한 법률(화평법)'의 제정이다. 환경부가 지난 7월 입법예고한 화평법의 법률적 근거는 EU가 시행하고 있는 'REACH'라는 제도다.

이 법에 따르면, EU는 국민의 건강 및 환경보호 강화를 위해 10만종에 이르는 화학물질이 1톤 이상 제조 및 수입될 경우, 이를 제조사가 스스로 등록 및 평가하도록 하고 있다.(2007년 6월 시행)

EU는 신규에 유통되는 화학물질뿐만 아니라 기존화학물질 등 10만종에 이르는 화학물질을 이 제도에 따라 등록 사용토록 관리하고 있다. 등록에 필요한 비용, 등록하지 않고 판매해 발생하는 인체의 질병 등 모든 사회적 비용을 제조사가 부담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떠할까? 환경부가 화평법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EU의 기준인 1톤 이상의 제조 및 수입업체이다. 하지만 EU전체의 경제규모는 우리나라의 몇 배 이상에 해당한다. EU전체에서 연간 1톤 이상에 해당하는 업체의 화학물질은 10만종 정도라고 보면, 이를 우리 경제상황에 적용하면 연간 1톤 정도 제조·수입하는 업체에 따른 화학물질은 약6∼7천종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 취급되는 화학물질 5만종의 1/8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환경부는 이에 대해 지식경제부 등 개발부처가 반대하기 때문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특히 적용대상을 확대할 경우, 업체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 수 없어 법 제정의 난항이 예상된다는 답변을 늘어놓고 있다. 그렇지만 적용대상을 확대하지 않을 경우, 화학물질의 체계적 관리라는 당초 목표를 시행할 수 없는 상태이다. 오히려 법이 무분별한 화학물질의 범람을 묵인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그동안 유해화학물질을 제외한 화학물질에 대한 규제의 길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화평법의 제정만이 능사는 아니다. 인체에 유해한 화학물질을 최대한 많이 등록시키고,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우리나라 화학산업 규모는 세계7위 수준. 화학물질에 대한 관리체계를 제대로 갖추는 것이 오히려 주요 교역상대국과의 수출입관계에서 더욱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이다. 우리나라는 수입량에서 코크스·석유정제품이 2006년 1천4백만 톤에서 2010년 1천만 톤으로 28.6%가 감소한 반면, 화학물질 및 화학제품제조업은 2006년 2천10만 톤에서 2010년 2천4백20만 톤으로 20.4%가 증가했다. 반면 제조량은 코크스·석유정제품이 2006년 3천8백80만 톤에서 2010년 4천7백90만 톤으로 23.5%가 증가하고, 화학물질 및 화학제품제조업은 2006년 1억3백60만 톤에서 2010년 9천4백30만 톤으로 8.98% 소폭 감소했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화학물질의 수입 및 제조량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러한 까닭에 화학물질에 대한 체계적 관리는 더욱 심각한 실정이다. 유해화학물질인 불산사고로 인한 피해는 물론이고, 제2, 제3의 가습기살균제 사고로 대규모 인명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화평법의 제정이 이뤄져야만 한다.
▲ 이상현 / 녹색미래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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