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가을 서원 일념의 추억

▲ 익산성지내 구정화원. 지금은 빈 터로 남아있다.
▲ 현 원광대 원불교학과 서원관.
깊어가는 가을의 향취를 느끼며 소태산 대종사와 선진들의 기운이 서려있는 총부를 거닐다 보면 예비출가자로서 처음 서원을 다지고 법동지들을 만나게 되었던 서원관 생활에 대한 그리움이 새삼스레 떠오를 때가 있다.

지금의 출가자인 내 자신이 있기까지 또 우리 교단이 자리 잡기까지 수많은 선진들께서 예비교무 시절 거쳤던 많은 갈등과 감사함, 그리고 소중한 법담들이 가을바람과 함께 다시 불어오고 있다. 지금은 예전과 달라진 원광대학교의 풍경들, 총부 구내에 있던 남녀기숙사 학림사와 정화원은 이제 총부 외곽으로 이전되었고, 아직도 눈에 선한 기억들을 곱씹어 보니 서원관에 처음 들어설 때 신입생 훈련과 예비 전무출신으로서 원불교교학과에 입학하여 어떻게 살아왔는지 되새겨 진다.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에 입학을 하는 경우 희망에 따라 2년 간 간사근무를 하고 혹은 바로 학교에 입학을 하게 된다. 일반 대학처럼 3월 학사일정에 따라 개강을 하게 되지만 예비교무들은 2∼3주 전부터 서원관 별 기숙사에 입사하여 신입생 훈련을 받게 된다. 지도교무들의 지도아래 4학년 방장학년이 중심이 돼 서원, 신심, 교리, 법규준수를 익히게 된다. 또한 서원관의 생활에 대한 안내 등을 지도 받고 일반 학생들처럼 학업을 위한 수강신청을 하게 된다. 그렇게 신입생 훈련을 마치게 되면 남녀 기숙사별로 신입생을 맞이하는 나름의 환영식을 준비하게 된다. 서원관 생활의 첫 시작을 알리는 관문이다.

지금은 하나의 건물로 되어 있는 서원관이지만 예전에는 남여 서원관이 따로 있었으며, 현재 총부 내의 보은원이 그 당시 남 서원관인 학림사 건물이었으며, 여 서원관인 정화원은 철거돼 현재 빈 공터로 남아있다.

여 서원관의 경우 착복식이라 하여 예비교무 정복을 입는 의식이 진행되며, 정화원의 특성 상 그 진행방식이나 식순 등은 널리 알려지지 않는다. 남학생의 경우 정복을 착용하고 학림사 앞에 모이게 된다.

학림사 앞에 모인 신입생들은 재학생 대표의 인솔 하에 2학년, 그리고 3학년이 기다리는 각각의 장소에서 선배들이 준비한 의식 등을 진행하고 마지막으로 대종사성탑을 향하게 된다. 그리고 성탑에서는 4학년 선배들이 촛불을 켜고 '심고가' 및 '원하옵니다' 등을 부르며 첫 출가의 문에 들어선 신입생들을 맞이한다.

신입생들은 각자의 출가일성을 크게 외치며, 선배들과 더불어 성탑참배 후 학림사 법당인 깰터로 가서 한 자리에 모여 앉는다.

깰터에 모인 재학생, 그리고 신입생은 함께 어울리는 모임의 시간을 갖게 되는데 신입생들이 선배들을 이겨야 서원관에서 받아준다는 명목으로 몇 가지 시합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신입생들이 이길 확률은 극히 낮으며, 돼지씨름, 몽고씨름, 거북이점 등 일종의 신고식을 거쳐 선후배가 화합하는 시간을 갖는다. 단 이러한 신고식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을 가진 분들도 있긴 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건 이 시간을 통해 선후배들이 단합을 하게 되고, 서로 간의 얼굴을 익히고 정을 쌓게 되는 시간임은 분명했다. 연령대에 따라 미보리·중보리·수보리라는 애칭으로 구분하였는데, 신입생들 역시 수보리를 중심으로 뭉쳐서 학년의 단합된 힘을 보여주며, 수보리 형님들은 학년으로는 질지언정 개인의 역량에서는 선배들을 이기기도 하며 그런 모습속에 미보리, 중보리들은 수보리 형님들을 더 따르게 된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다음날 신입생들은 영산성지에 가서 봉고식을 올리고 정식으로 학림사생이 된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신입생들은 학림사생이 되었으나 배정받은 방에 들어가기 위한 의식이 있었으니 이른바 입방식이라 불리는 통과 의례가 있었다. 이제는 자신의 방에 들어가기 위해 각 방의 선배, 즉 방장이라 불리우는 4학년 선배들의 사인을 받아 자신의 방장 선배에게 확인을 받는 것으로 입방식 미션은 하루 내 하도록 되어 있었다. 말이 선배들의 확인을 받는 것이지 실제로는 쉽게 통과하는 관문이 아니었다. 각 방장마다 여러 가지 미션을 주는데, 그 중에는 엉뚱한 미션들도 있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즐거움을 주는 것들도 있었다. 이는 골탕 먹이는 재미와 학림사 선배들의 얼굴을 익히게 하는 점, 익산성지의 구석구석을 알게 하는 네비게이션 미션 등 그 의미가 다양했다. 아마도 즐거운 입방식 혹은 생각하기 싫은 입방식의 주인공들이 교단 여러 곳에서 각자 맡은 바 그 일 그 일에 정성을 다하고 있기에 오늘 날 우리 교단의 법정이 자리잡는 것이 아닐지 추측해 본다.

필자의 입장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미션이 있다면 4학년 때 동기 중 무근수일주(뿌리없는 나무 한그루)라는 대산종사가 내려준 성리법문을 응용하여 성탑에 가서 무근수일주를 찾아오라는 미션을 준 적이 있다. 당시 우리 4학년 동기들도 너무나 어려운 미션이라고 구박을 주었지만 평소 선과 기도, 그리고 성리에 관심이 많았던 동기로서 당연히 한번 연마해야 할 것인데 내가 먼저 공부시켰다고 항변을 하며 서로 웃었던 기억이 있다.

또 다른 4학년 동기는 한 신입생에게 성탑 옆의 연못에서 금붕어를 잡아오라고 장난스레 미션을 주었는데 그것을 알게 된 다른 신입생들은 그 방을 피해서 가기도 하고 그 미션을 받은 신입생은 차마 총부에서 물고기를 잡지 못해서 택시타고 시내에 가서 금붕어 한 마리를 사오기도 하는 등 지금도 만나서 이야기 하면 크게 웃고 지나갈 추억을 쌓기도 한다. 또 어떤 신입생은 주어진 미션이 "출가해서 행복해요"라는 외치기였는데 영모전 광장을 뛰어다니며, 그 외치기를 할 때 출가를 반대했던 부모님이 때마침 방문하여 그 모습에 마음을 녹인 일도 있다. 물론 그 후배는 지금 복학하여 열심히 정진적공하고 있다.

그렇게 하루 해가 넘어갈 때 쯤, 4학년 선배들은 자기 신입생 방원들을 찾는다. 얼마나 확인을 많이 받았는지, 어느 선배가 가장 짓궂은 미션을 주었는지 슬쩍 물어보고 도움을 주기도 하며 격려해준다. 그리고 저녁에 되면 신입생들은 방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을 받게 된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못 들어간 적은 없으며, 입방식을 통해 신입생들은 각자 살게 될 기숙사 내부와 각 학년 선배들의 얼굴도 익히고 인사도 나누게 되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신입생 훈련, 영산 봉고식, 여학생의 착복식과 남학생의 입방식이 끝나게 되면 본격적인 예비교무의 생활이 시작된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무출신을 서원하면 간사근무를 시작으로 여학생은 8년 남학생은 군대복무를 포함하여 11년의 수학과정을 거치게 되며 그 과정 속에 하늘을 찌를 듯한 마음 하나만으로 시작했던 전무출신의 서원은 어느새 주세교단에 대한 자부심과 제생의세의 서원으로 가득차게 되어 교화현장에서 보은 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소중한 수학의 경험 속에서 일과준수로 득력하고자 노력했던 그 시절, 서원일념을 반드시 이루고자 혈심정성을 다하던 그 시절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필자를 이끌었던 선배들도 함께 수학했던 도반들도 그리고 후배들도 어엿한 전무출신으로서 앞으로 교단을 책임지는 소중한 사람이 되었다.

처음 마음을 내어 출가했던 그 시절의 마음가짐과 지금의 마음가짐에 변함은 없는지 스스로에게 되물어본다.

출가의 첫 마음처럼 진리에 대한 서원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점검해 본다. 혹 되고 있지 않더라도 지금 이 순간부터 다시금 자신의 마음을 추스리고 진리 전에 다짐한 서원일념을 이루고자 할 때 교화대불공을 통한 교운융창의 문이 열릴 것이다.

<원불교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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