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은 큰집과 작은집 고모님들이 모두 원불교에 다니는 일원가족이다. 그리고 고모님 한 분은 교무이다. 이런 내가 원불교 교도가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철모르던 시절 어린이법회부터 나가기 시작해 학생회와 청년회를 거쳐 지금까지 변함없이 원불교 교도로 살아오고 있으니 나에게 원불교라는 환경은 숨을 쉬는 공기처럼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그토록 오랫동안 원불교의 울안에서 살아왔으면서도 정작 나에게는 특별한 신심이나 공부심은 없었다. 단지 명색만 교도로서 제대로 된 수행 없이 몸만 법회에 왔다 갔다 했을 뿐이었고 법회에 빠지는 일도 많았다.

그 이유는 사춘기시절부터 앓기 시작한 오랜 우울증 때문이었다. 나는 내 우울증을 감추어야할 허물로 부끄럽게 생각했고, 누가 나의 병을 알아차릴까 두려운 마음에 사람을 만나면 긴장부터 하곤 했으니 사람 많은 자리에 가는 것은 고역이었다.

더구나 교당에 나가는 일 자체가 나에겐 큰 경계였다. 집에서 편하게 있다가 교당에 다녀오면 항상 원불교 교도로서의 함량미달이라는 자책감에 스스로를 괴롭히곤 했던 것이다.

부모님께 부끄러운 딸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스스로를 다그치며 살얼음판을 걷듯이 조심조심 살아왔기에 여태껏 큰 잘못 없이 착한 여자로 살아오기는 했지만 내 삶이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이 그다지 평탄하지 않았기에 그렇지 않아도 우울한 내 마음은 점점 더 깊은 바닥으로 가라앉는 듯 했다.

신혼시절부터 계속된 경제적인 어려움과 시댁과의 갈등, 둘째아이의 유산, 남편의 사업실패와 2년 주기로 찾아온 양가 부모님들과의 이별 등등… 하나같이 나에게는 너무나 벅찬 문제들이었다.

결국 대종경 요훈품 12장의 "희망이 끊어진 사람은 육신은 살아있으나 마음은 죽은 사람이니, 살·도·음을 행한 악인이라도 마음만 한 번 돌리면 불보살이 될 수도 있지마는, 희망이 끊어진 사람은 그 마음이 살아나기 전에는 어찌할 능력이 없나니라"라는 말씀에 나오는 것처럼 나 스스로 희망이 없는 상태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러던 중, 같은 교당의 도반으로부터 마음공부를 권유받고서 원경고등학교에서 하는 연수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어마어마하고 놀라운 믿어지지 않은 큰 변화를 경험했다. 그날 이후 조금도 우울하지 않았던 것이다. 마치 나 자신이 아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밝아진 내 모습에 남편과 아이도 함께 기뻐해줬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며 참가한 교육이었다. 우울증을 치료하려고 병원도 가고 약도 이것저것 여러 종류를 바꿔 먹어보고, 책도 읽고 운동이니 세심법이니 마인드콘트롤이니 뭐니 하는 온갖 방법을 다 시도해 보았던 터라 마음대조 공부도 지나온 것과 크게 다를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시각각 변화하는 마음의 움직임을 보고 나의 분별성과 주착심을 찾아보는 마음공부는 이제까지의 다른 방법들과는 차원이 다른 훈련법이었다.

마음공부는 지금까지와 전혀 다르게 생각하는 법을 내게 알려줬다. "우울한 마음은 나쁜 마음이 아니라 묘한 마음"이라는 박영훈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서 나는 앞을 가리고 있던 두꺼운 장막이 벗겨져 나가는 듯 후련했다.

<진주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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