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무덤 위에 마음 하나 얹어 놓고 타박 타박 걷기만 해도 좋은 길

▲ 구불구불 이어진 돌담, 어느집 안뜰에 나무 그네가 길손을 기다리고 있다.
아미산 아래 명당이 있다. 그 산자락 반반한 터에 자리한 반교리마을. 작은 다리를 건너니 '반교마을 돌담길' 표석이 있었다.

어느 시골집 흙벽 아래에 놓인 반듯한 화강암이 부자연스러운 듯 묘하게 어울렸다. 2006년 12월4일에 문화재로 등록되었다고 적혀 있다.

농가를 안고 둥글게 말린 돌담을 따라 걷는다. 자연스레 굽이지는 개천을 닮아 반교리 마을 돌담은 물 흐르듯 이어진다. 산에서 흘러온 개울 물 소리가 잔잔하다. 곳곳으로 흘러간 담장은 마을 주변의 여러 밭을 나직이 두르며 이내 땅으로 스며든다.

돌담길을 따라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돌담은 끝이 없었다. 열 지어 있는 집들 앞으로 돌담을 쌓아 경계를 만들었다.

돌담 아래는 울긋불긋한 봉숭아가 화사한 기운을 내뿜고 탐스런 열매가 달린 호박넝쿨이 돌담을 넘나들었다.

길 중간쯤, 전나무 한 그루가 있고 지금은 이것저것 모아두는 창고로 보이지만 세월의 때가 켜켜이 묻어 그것마저 풍경이 된다.

문패 대신 대문 쇠말뚝에 이름을 써 놓은 어느 농부의 집은 바지런하다. 처마 끝에 양파며, 마늘 등을 주렁주렁 매달아 놓았다. 인기척이 없다. 다시 타박타박 걷는다.
▲ 반교마을 정혜윤 할아버지 내외. 가을 햇볕 친구삼아 마늘작업을 하고 있다.
노부부가 마당에 마늘을 펼쳐놓고 마주 않아 작업하는 모습이 정겹다. 정혜윤(80)할아버지가 작은 마늘을 까기 좋게 나눠놓고, 이내 할머니가 차분차분 한 알씩 다듬었다.

노부부와 자연스런 대화가 이어졌다.

"마늘 까고 계시네요. 도와드릴께요"
"밭 갈아서 우리 먹는 거지 뭐. 나 먹을 건 돼"

"돌담길 구경하러 왔어요"

"여긴 순 돌 무더기여. 전부가 돌담이잖여. 여기 돌 쓸 데가 없어서 다 쌓은 겨. 예전 새마을 사업할 때 길 닦아 논다고 마니들 실어냈는디도, 엄청나게 많은 돌여. 저기 산에 가면 더 많어. 돌이 겁나."

할아버지는 연신 돌이 '엄청' '겁'나게 많음을 이야기 했다. 그 엄청나고 겁나게 많은 돌들이 작고 아담한 담길로 이어진 것이다.

이곳 반교리 돌담길은 마을주민들이 돌담길보존회를 만들어 옛 방식 그대로 돌을 쌓아 올렸다고 한다. 돌만을 쌓는 이런 방식을 '메쌓기' 혹은 '건성쌓기'라 하고 그런 돌담을 '강담'이라 한다.

마을을 돌다 어느 집 뜰에서 걸음이 멈췄다. 사람이 집을 비운 지 오래된 집이었다.

"예전에는 150가구 됐는디, 사람 죽으면 비고 허니께 맨 늙은이들만 살지. 제일 젊다는 사람이 환갑 이쪽 저쪽이여."

"젊은이덜? 에구 없어유, 40대는 하나도 없어. 우리네가 여든(80)이라도 아흔여섯(96) 먹은 사람도 있어."
'가마솥에 콩 띄워갔고 고추장 담글라꼬'한다는 올해 여든이신 할머니의 말이다. 빈집은 늘 애잔하다.

장작을 잘 갈무리한 어느 농가는 참 예쁘게도 쌓았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니 겨우내 땔감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 반교마을 옛 돌담장은 특별한 것은 아니다. 마을의 밭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막돌인 호박돌을 이용해 쌓은 담장이다.

담장의 높이는 약간씩 다르지만, 길가에 쌓은 담장은 어른 키 보다 조금 낮다. 담장 너머로 울안이 들여다보일 정도이다. 이렇듯 민초들의 담장은 누구나 얼굴을 마주할 수 있도록 낮게 만들었을 터이다.

쉬고 또 쉬는 집 '휴휴당'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이곳 반교마을에 집을 하나 지었다. 거의 1년이 걸려 완성된 집에 그는 '휴휴당(休休堂)'이란 이름을 지어줬다. '쉬고 또 쉬는 집'인 것이다.

그의 책 '나의문화유산답사기' 제6권 333쪽에 휴휴당에 관한 대목이 있다. "방 한칸, 부엌 하나 있는 8평짜리 세칸 기와집과 헛간과 뒷간을 붙인 4평짜리 플라스틱 기와집, 두 채다. 집에 대해서는 나의 고집이 있다. 집은 절대로 크면 안되고… 한옥은 무조건 세 칸 집이 예쁘고, 툇마루가 놓여야 멋도 운치도 기능도 살아난다."

그는 책에서 휴휴당 얘기를 무척 아꼈다. 문화유산을 찾아 평생 발품 팔아온 그가 '한옥은 무조건 세 칸이 예쁘다'는 것 외엔 달리 설명이 없다.

휴휴당에는 주인이 없었다. 마당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주인을 대신해서 대나무 장대 두 개가 가로로 걸쳐 있었다. 구멍과 구멍을 가로질러 장대가 하나도 없으면 '집에 사람이 있다', 한 개가 걸쳐 있으면 '지금 사람이 없는데 곧 돌아온다', 두 개면 '조금 멀리 출타했다'는 뜻이 된다. 유홍준 전 청장은 '조금 먼' 서울에 간 것이다.

본채와 별채(뒷간과 헛간으로 쓰이는 작은 기와집), 시냇물 소리가 들리는 정자와 석등이 휴휴당의 전부였다. 대신, 온갖 식물들이 적당한 공간을 차지하고 별채 헛간에는 손때 묻은 낫이며 호미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휴휴당의 남쪽은 작은 시내가 흘러 담장 구실을 했다. 물가에 서 있는 정자의 이름은 '탁오대(濯吾臺)'. 이 현판은 퇴계 이황의 서체로, '나를 깨끗하게 한다'는 뜻이다. 친절하게도 탁오대에는 목침까지 놓여 있었다.

인기척 없는 참으로 고요한 휴휴당 뒤뜰, 물소리는 그대로가 자연의 화음이었다. 그 곳에서 한참동안 몸도 마음도 쉬고 또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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