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긴 행복의 길을 가고자 하나 그 출발점은 나로부터의 행복이다. 나로부터의 행복은 존재의 자각에서부터 비롯된다.

완도의 동백나무 숲에서 대산종사의 종법사시절 야단법석이 있었다. 여러 대중에게 "여러분의 마음 나이는 몇 살인가요." 일흔, 마흔일곱, 열다섯 등등 대답을 하는데 인증하지 않다가 어느 사람이 "0살입니다!"라고 하니 절반만 맞았다. 이어 다른 사람이 "한 살입니다!"라고 하니 "맞았다"고 했다.

여기에서의 한 살은 하나라는 말인데, 하나는 근본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전체가 하나이기도 하고, 또 한 유기체를 이룬다는 함축적인 의미도 지녔다. 우리 마음의 나이는 우주와도 같은 나이이고, 또 모든 영혼이 같은 나이이기도 하다. 즉 우주가 존재할 때 같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우주와 더불어 영원하다. 하지만 영혼이 미하여 힘이 없어지면 먼지처럼 주유할 수 있으니 존재적 자각은 꼭 필요하다.

'나'라는 존재는 우주와 같다. 나의 마음가짐 하나가 우주에 그대로 미친다. 한 학생이 "우주자연을 객관화하여 볼 때 고통이 사라진다는 책을 보았는데, 마음 한편으로는 나의 생각이 내 운명을 정한다고도 본다. 두 가지가 다 의미가 있어 보이니 헷갈린다"고 한다.

우주 자연을 객관화하여 보면 자연의 변화들은 하나의 거대한 생명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가고 있고, 사람도 우주의 한 개체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살아간다. 이런 거시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은 욕심에 의한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한다.

영적인 차원에서 보면 우주는 마음으로 만든 세상이다. 내 생각이 바뀌면 그 중심으로 우주가 변하는 측면도 있다. 내가 바뀌면 이상하게도 주변 사람이 변하거나, 그에 따른 인연들이 모여드는 것과도 같다. 또한 감사하는 마음을 자꾸 내면 상생의 기운이 우주자연에 미쳐서 상생의 기운으로 조금씩 동화되어 간다. 이처럼 '나'라는 존재는 힘이 있으면서도 존귀하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의 각자도 마찬가지이다. 각자의 생각이 중심이 되어 조화를 이루며, 우주와 더불어 움직인다. 시공에 갇힌 생각으로는 이해가 어렵지만, 지난 날의 일상을 비추어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될 수도 있다.

마음이 행복하면 어느 정도의 물리적 장애는 그리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나아가 세상은 마음으로 만들어진 세상이라 마음가짐대로 세상은 서서히 바뀌어 간다. 행복한 삶을 꿈꾼다면, 우주의 중심인 내 영혼을 사랑하며 가꾸어 가면 된다. 내 영혼은 우주와 더불어 불생불멸하는 존재로서, 미하기로 하면 존재의 의미마저 무색해지지만 힘이 있으면 우주를 움직일 수 있는 존재이다.

각자의 영혼은 우주와 더불어 함께하는 존재이지만, 출발점은 언제나처럼 나로부터 이루어지고, 나의 행복은 내 영혼을 사랑하는 데에서부터 비롯된다.

<삼동연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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