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 강좌는 여러 번 반복해서 듣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반복해서 들을수록 더욱 더 만족감이 높아진다. 사실상 똑같은 내용과 똑같은 과정인 것 같은데도 신기하게도 매번 들을 때마다 새롭다. 나 역시 똑같은 과정의 강좌를 세 번을 반복해 들었다. 그리고 매 회차가 끝날 때마다 다른 결과를 얻었다.

그것은 아마도 그 강좌를 듣는 사람의 수준이 달라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옛말에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듯 마음을 대조하는 능력이 커진 만큼 강좌의 깊이도 달라졌다. 그리고 마음대조 공부에서도 잘한다고 해서 기분 좋아하고 못한다고 해서 실망하는 것이 아닌 잘해도 공부, 못해도 공부인 단계를 맛보게 됐다.

그리고 점차 마음대조 이외의 수행에도 관심을 두게 됐다. 신심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

'신이라 함은 믿음을 이룸이니 모든 것을 이루려할 때에 마음을 정하는 원동력이니라'는 말씀처럼 수행을 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정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만큼의 믿는 마음만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사소한 습관 하나부터 개선해보자는 마음으로 유무념대조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어떤 행동을 3주 정도만 계속하면 몸에 익어진다고 한다. 습관을 바꾸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양치질을 게을리 해서 충치가 생긴 일이 있었는데 그 일을 동기로 해서 꼬박꼬박 양치질을 하는 것을 제일 처음 유무념으로 잡았다. 그리고 한 달쯤 뒤엔 평생 동안 잘 되지 않던 하루 세 번 양치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에 성공했다.

그 다음으로는 조석심고를 모시는 것을 잡아서 열심히 기록했다. 그런 식으로 조금씩 생활의 체계를 잡아가며 공부하는 즐거움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전에 없던 힘이 생기는 듯했다. 그러나 역시 매일매일 생활한 바를 꾸준하게 기록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원불교 수행과 연관된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들을 발견하게 됐다. 〈원불교 수행〉이란 어플은 유무념과 조석심고, 상시응용주의사항 교당내왕시 주의사항, 계문, 정기일기, 등등을 쉽고 간편하게 기록할 수 있게 꾸며져 있었다. 휴대전화는 항시 몸에 지니는 것이니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무거운 교전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어플만 열면 언제 어디서든 교전을 열람해 볼 수도 있었다.

마음공부의 힘은 스스로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수 없는 것 같다. 객관적으로 보아서는 별반 대단할 것도 없는 것이 내 모습이지만 나 스스로 생각하기엔 대견해진 면이 정말 많다.

사람을 대하는 것에 좀 더 자연스러워지고 쓸데 없는 자의식에 괴로워하는 것이 많이 사라졌다. 하기 싫은 일을 대할 땐 무조건 피하려고만 했는데 '공부삼아'라는 말에 기대 과감하게 해볼 수도 있게 됐다. 잘못해도 괜찮았다. 법회에 나가는 것이 좀더 편안해지니 출석률도 높아졌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 대한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 나의 단점이나 불만족스러운 부분에 집중하는 대신 잘하는 것, 또 자랑할 만한 것에 관심을 두게 되고 자연스럽게 자존감 내지는 자신감이 자라기 시작했다. 나 자신을 존귀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로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소중한 만큼 남도 소중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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