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외우는 일상수행의요법 8조는 오늘 하루도 잘 가르치는 내가 되겠다고 염원하며 외우는 구절이다.
어떻게 해야 남을 잘 가르칠 수 있을까? 가장 가까운 인연들이라 해서 가르치기가 늘 쉬운 것은 아니다.

남을 가르치는 방법은 먼저 내가 실행하는 데 있다고 하셨다. 부모 자녀와 같이 무간한 사이라도 자기가 실행하지 못하는 조건으로 지도하면 그 지도를 잘 받지 아니하고, 부부와 같이 친절한 사이라도 내가 실행하지 못하는 조건으로 권면하면 그 권면을 잘 받지 않는다 하셨다. 회상에서는 법동지간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남을 가르치는 법은 오직 이신선지(以身先之)요 솔선수범이라는 말씀이다. 맹자도'신불행도 불행어처자(身不行道 不行於妻子)'라 하여 자신이 도를 행하지 않으면 처자에게도 행해지지 않을 것이라 했다.

〈한울안 한이치〉의 마음공부 35절에도 "사람을 가르치는 데 행동으로 시범을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셨다. 실지 행동은 하지 않고 말로만 가르치려 하는 것은 마치 변기에 밥을 담아 놓고 먹기를 권하는 것과 흡사한 것이라 하시고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추한 그릇에 담겨 있으면 뭇사람들이 얼른 먹으려 하지 않을 것이므로, 법을 담은 내 그릇을 바룬 연후에 말을 해야 그 말에 효과가 있다 하셨다.

성자로 불리우는 슈바이처 처럼 실천궁행하는 사람만이 감명과 산 교육을 줄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 하는 성불제중이란 바로 가르침을 베푸는 일이다. 가르침이란 참으로 성스럽고 가치 있는 일이다.

성불제중의 서원은 우리들의 생활 속에서 실제로 구현되어야 하는데 그 방법이 바로 나로 부터의 실천이다. 나의 실천을 통해서 내가 속한 가정, 사회, 교단이 실천하고 그 실천이 사회적으로 확산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을 가르치려는 사람은 항상 먼저 자기 자신부터 가르쳐야 한다. 산 불법의 신앙생활은 불법을 생활에 부합시켜 활용해야 하는 것이다. 법문을 등대삼아 옳은 일을 하는가, 그른 일을 하는가 항상 자기 대조를 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이 좋은 줄을 모르거나 원이 없을 때에는 무리하고 성급하게 권하지 말고, 묵묵히 내가 할 도리를 다하여 그 사람이 스스로 깨쳐 원하도록 인내심을 갖고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어디서든지 지도자는 끊임없는 자기 반성과 자기 발전을 가져올 수 있도록 항상 지행을 대조해야만 지도받는 사람들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으면서, 새 세계 건설과 새 질서 확립에 앞장 설 수 있다.

<전 영산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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