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교무가 되겠다는 청년을 만났다. "교무가 되어서 뭐하려고?" "성불제중하려고요" "성불제중하면 뭐가 좋지?" "지혜를 닦고 복을 많이 지으면, 육도(六途) 중 가장 좋다는 사람 몸을 받아 재벌이 될 수 있잖아요. 사람이 된 이상 재벌이 가장 좋으나, 재벌 되기까지는 너무 어려워 재벌 아들로 태어나려고요."

돈이 많으면 정말 가장 행복할까? 그 동안 재벌·대학자·총리 등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었는데 돈·학문·권력만큼이나 많고 깊이 있는 행복을 지니지 않았다. 오히려 수행자에게서 깊이 있는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육도 중에는 인도(人道)보다 천도(天道)가 낫다. 인도는 수행하기에 좋은 환경이지만, 천상영혼의 입장에서는 진화가 덜 된 집단으로 여긴다.

법마상전급까지의 열반인에게는 사람 몸 받아 정법회상에서 이 공부 이 사업을 하고자 원을 세우라고 하지만. 항마 이상의 열반인에게는 천도법문을 하지 않는다. 길이 다르기 때문이다. 항마 이상의 열반인에게 내리는 종법사 법문을 보면, "법계에 쉬시다가 이 회상에 일이 있을 때 다시 오셔서 회상을 위해 힘써 달라"고 부촉을 한다.

천상이 좋기는 하나 영혼은 마음먹은 즉시 움직이기에, 수행을 하기에는 사람 사는 세상만큼 좋지 않다. 몸에 따른 물질의 일이 있고, 전생일이 가려져 있는 인도가 수행에는 오히려 적합하다. 마음에서 행동으로 이어지는 많은 과정을 면밀하게 바라보며 수행하면, 마음을 깊이 닦아서 길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대종사님이 이 한 생을 안 난 폭 잡고 이 공부 이 사업에 전일하면 100생에 닦을 거, 이 한생에 닦을 수 있다고 했다.

이 회상이 인지가 열리는 시기에서의 정법회상이기도 하지만, 사람의 몸으로 수행하는 것이 영혼보다 100배의 밀도를 지녔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우주 생성의 시기에 정법회상을 만난 수행은, 영생의 관점에서 볼 때 아주 귀하디 귀한 일이다. 봄에 씨 뿌리는 격이라 욕심내어 매진할 만하다.

선천시대에는 인지가 어두워 폐쇄된 공간에서 수행을 했다면, 오늘 날 후천시대에는 일상의 삶에서 수행을 한다. 이 일상의 삶을 알고 보면 천상에서 자기가 대체로 설정해 놓았든, 전생의 업연으로 되었든 수행의 종합 터전이다.

이 세상에서의 삶의 내용과 닦아온 수행은 몸에 따른 정보만 빼놓고, 내생이든 천상에 이르든지 그 영성의 수준 그대로 나타난다.

우리의 수행은 영생을 통하여 행복하자는 것과 삶의 행복한 과정이다. 자기의 영혼을 사랑하고, 아름답고 힘 있게 가꾸고자 하는 데서부터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의미가 선명해질 뿐만 아니라, 참다운 종교의 신앙과 수행도 이로부터 비롯된다.

<삼동연수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