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를 동반하는 찬바람을 맞을 때가 되면, 한해가 시작 될 때 결심했던 일들이 어느 정도 책임있게 달성되었는지 잠깐이라도 점검해 보는 여유가 필요하다. 그러한 여유를 갖고 보면 남은 일을 끝까지 최선을 다하려는 책임감을 더욱 챙기게 된다.

출가 하신 분들의 열반 통지문에 항상 옷깃이 여며지는 내용중의 하나가 '봉직하시면서 맡은바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삶을 살으셨다'는 것이다.

성산(誠山)종사께서는 정관평을 관리하다가 구간도실에 누워있으면, 정관평 둑에서 바닷물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해서 나가 확인해보면 과연 게 구멍으로 바닷물이 들어오고 있었다는 일화가 있다.

정관평과 구간도실의 거리는 평소에 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는 거리인데도 성산종사께서 바닷물이 흘러 들어오는 소리를 들은 것은 오직 하나, 책임감 때문이었다.

공부인들마다 맡은 역할에 따라 많은 책임이 있을 것이다. 인도품 23장 법문을 보면 '각각 그 책임만 이행한다면 이 세상은 질서가 서고 진보가 될 것인즉, 각자의 책임 이행도 잘 하려니와 또한 남의 책임 이행을 방해하지도 말라'고 하셨다. 각자의 책임이 있는데 남이 하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 다른 이의 책임을 가볍게 보고 방해 하지 말라고 경고해 주셨다.

집을 짓는 데에도 주초와 기둥과 들보가 각각 책임이 있어서 그 있는 바 위치에서 서로 힘을 합하지 아니하면 능히 집을 건설하지 못하는 것 같이 나라를 건설하는 데에도 각각 책임이 있어서 서로 힘을 합하지 않으면 능히 나라를 건설하지 못하는 것이라 하셨다. 책임감이 없는 구성원들이 있는 회사나 조직은 결국 신뢰를 잃게 된다.

그런데, 이 모든 책임 가운데에는 모든 책임을 지배하는 중추(中樞)의 책임으로 사람은 그 마음이 중추의 책임이 되고, 사회·국가는 모든 지도자가 그 중추의 책임이 되어 모든 기관을 운영하고 조종하게 된다고 하셨다.

마음은 진리에 어두운 중생에게도 있고, 진리를 깨달은 불보살에게도 있지만 마음을 보아다가 사용할 때에 본래 마음에 합일하여 쓰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습관과 업력에 끌려서 사용하는가의 차이에 따라 그 마음이 중추의 책임을 다할 수도 못할 수도있는 것이다.

일체가 다 마음이 짓는 이치를 아는 사람은 마음공부에 정성을 다해 책임있는 공부인으로 성장 할 것이다. 더구나 조직의 흥망성쇠와 결부된 막중한 책임감 앞에 능력발휘에 대한 압박감 속에 살아야 하는 지도자 일수록 더욱 마음공부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전 영산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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