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지선 원무 / 압구정교당
욕구 충족과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요즈음의 아이들, 장난삼아 재미로 친구를 괴롭히고 집단폭행과 금품을 빼앗는 등 도에 넘치는 행동을 일삼아 괴롭힘을 당한 친구가 삶을 포기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어 모두를 놀라게 하고 있다.

또 잘못을 저지르고도 반성하고 뉘우치기는커녕 잘못을 지적하는 것에 대해 불평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누가 이 아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예전에는 아이들이 잘못을 저지르면 동네 어른들이 다 내 자녀처럼 훈계하였으나 요즈음엔 아이들의 잘못을 보고도 지도하지 못하는 어른들이 되고 말았다,

가정을 보면 부모는 부모대로 자녀는 자녀대로 서로의 바쁜 일정에 대화는커녕 얼굴조차 보기 힘들고 그나마 컴퓨터와 모바일 게임, TV시청 등으로 가족간의 대화가 사라져 가고 있다.

그러니 사소한 일에도 욱하는 마음에 부부간, 부모 자식간, 형제간에 서로 상처주는 언행으로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또한 저출산으로 귀하게 키운 자녀가 조금 컸다고 부모의 훈육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태도에 부모들은 실망과 분노, 안타까운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이렇듯 가정의 교육적 기능이 상실되고 있는 현실을 보고만 있을 것인가.

학교 또한 학생들의 인권 존중을 위해 인권조례를 제정하여 선생님들이 마음 놓고 학생들을 지도할 수도 없게 되었다. 내 자식처럼 열정적으로 지도할 수도 없을 뿐더러 교권이 서지 않아 사소한 지적에도 아이들은 물론 학부모들까지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학원에서는 성적이 떨어지면 때려서 라도 가르쳐달라고 하는 학부모들이 학교에서는 앞에 나와 서 있으라고 한 것에 대해서도 여러 친구들 앞에서 내 아이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고 항의하기도 한다. 초등에서조차 아이가 교사에게 대들고 폭행까지 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데 중등에서는 오죽하랴. 종종 인터넷이나 매스컴을 통해 접하면서 씁쓸한 마음이 든다.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가 빠른 속도로 경제적 성장을 이룬 것도 교육의 힘이 컸다고 했는데 학생 상호간 교사와 학생간의 관계가 신뢰하지 못하고 서로 단절되어 학교의 교육적 기능이 약화 되고 있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일찍이 대종사님께서는 그 당시 과학문명이 발달되지 못한 시기임에도 물질의 노예, 파란고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앞날을 걱정하셨다. 그러나 걱정만 하신 것이 아니라 그 해법을 제시해 주셨으니 이제 우리 원불교인들이 바빠져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그 처방에 따라 나부터, 우리 가족부터 마음공부로 낙원세계를 이루어야 한다. 그리하여 내가 가는 곳마다 은혜의 바람을 일으키고 상생의 바람을 일으켜 온 세상이 은혜로 가득 차 있음을 깨우쳐 줘야 한다. 그리하여 모두가 은혜의 안경, 감사의 안경을 쓰게 해야 한다. 대종사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러한 사명과 책임을 주셨음을 알아야 한다.

욱한 마음에 습관대로 성질대로 해버리는 어제의 내가 오늘은 일단 멈추는 기특함을 발휘해보고 자신을 성찰하는 것부터 실천해보자.

그 맛을 체험해 본다면 스스로의 자정(自淨) 능력을 인정하게 되고 모두에게 갊아 있다고 하는 것이 나에게도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소중함을 발견하고 다른 사람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 어떠한 상황에서도 은혜임을 알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으로 거듭나 자신의 행복과 가정의 화목, 상호 신뢰하는 학교, 나아가 국가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되도록 다함께 원 바람을 일으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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