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시작한 지 거의 2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애초에 독자 여러분과 한 약속인즉, 가벼운 차림으로 산책하며 대화하듯 원불교문학을 이야기하자 했었지요. 아무리 그래도 쉽고 가벼운 테마만을 다룰 수는 없었기에 그리 만만하지는 않았습니다. 어쨌건 그럭저럭 원불교의 문학 수위단(?) 열 분의 문학세계를 성글게나마 일별해 보았습니다. 잊을 만하면 찔끔 몇 마디씩 한 소리가 여러분 귀에 얼마나 남아 있기야 하겠습니까만, 그래도 독자들 마음속에 대종사 이하 원불교 선진님들의 문학이 생동하는 실체로 존재감을 드러냈다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일 것입니다.

우리는 불교의 게송이나 본생담을 들으면서 혹은 기독교의 성가곡이나 가스펠송을 들으면서 혹은 이슬람의 모스크 건축이나 수피댄스를 보면서, 각자의 종교적 소속을 떠나 경건한 감동을 느낍니다. 이런 것은 종교의 존재양식이 문화와 예술이란 옷을 입고야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메시지입니다. 기본적으로 전통이나 문화는 역사가 낳는 것이니 100년 미만의 원불교가 그런 면에선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문화라는 것은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생기는 열매 같은 것이 아닙니다. 방황하고 모색하고, 부단한 노력으로 창조의 역량을 축적하면서 지도자와 대중이 함께 쌓아가는 탑 같은 것이라 할 것입니다.

교조 소태산을 비롯하여 선진님들은 일제강점기란 최악의 상황에서도 문화창조의 시대적 사명을 잘 해냈다고 봅니다. 문학만 하더라도 여타 신종교들과 비교할 때 충분히 긍지와 자부심을 가질 만합니다. 그러나 광복 이후 세상은 엄청난 변화와 놀라운 진전를 보이고 있습니다. 어변성룡은 민족이나 국가만 두고 한 전망이 아닙니다. 국운과 교운이 함께 간다는 말씀처럼 원불교의 전망 또한 어변성룡이어야 합니다.

원불교의 문화 혹은 문학도 용의 비상처럼 획기적 변화와 속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점검할 과제가 있습니다.

첫째 원불교문학의 정체성을 세우는 일입니다. 불교와 다른 색채, 동학이나 증산교 등 여타 민족종교들과 다른 모습이 드러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컨대 원불교가 짝퉁불교가 아니듯이 원불교문학도 짝퉁 불교문학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둘째 원불교문학도 이제 우리끼리만 알아주는 문학, 사회에선 알은체도 않는 안방문학이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실력 있는 문인들이 나와서 사회적 이목도 집중시키고, 인기 있는 작품도 생산하도록 교단적 관심과 뒷받침이 있었으면 합니다.

셋째 인재 키우기입니다. 흔히 교무 등 전무출신 배출만 인재양성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좀 더 시야를 넓혀야 할 것입니다. 원불교서울문인회에서 '소태산청소년문학상'을 운영하면서도 깨달은 바이지만, 청소년 가운데서 문화예술적 재능이 있는 사람을 장학생으로 선발하여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관리하는 장치 같은 것도 고려할 만합니다.

교조 소태산대종사는 일찍부터 문화교화의 안목을 가지고 많은 문학작품을 손수 지었습니다. 또 정산, 삼산 등 선진들께서도 스승의 뜻을 이어받아 문학적 열정을 담은 유작들을 적지 않게 남겨 놓았습니다. 원불교100년기념성업이 진행되는 시점에서, 우리 후진들은 대종사와 선진들의 유지를 어떻게 받들 것인가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