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는 광대무량한 낙원에서 모두가 길이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 훈련이 있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교조인 소태산대종사께서 최초로 내놓으신 법어 '수신, 제가, 강약의 진화와 지도자의 요법'을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행복의 근간은 사회나 국가, 종교 등 단체가 아니라 개인에 있다.

한국이 경제발전을 이뤘지만 그와 반비례해서 자살율도 높아진 것처럼, 행복이란 집단과 개인이 부유한 것과는 비례하지 않는다.

단체가 어느 정도의 환경과 조건을 조성해 줄 수는 있어도, 만들어줄 수 없는 것이 그 한계다. 행복은 오직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이루어진다.

나로부터의 행복을 위해서는 자신을 알아야 하고(견성), 아는 만큼 자기화의 과정을 거쳐서(양성), 세상과 나눌 수 있어야 한다(솔성). 자신을 알아가는 것도 생물적이고 사회적인 인간의 삶을 기본으로 하고, 진리적인 나를 알고 가꾸어가는 데에서 길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인간은 예로부터 노력으로 먹고 사는 것 외에, 보이지 않는 힘을 믿었다. 인류사가 시작 될 때부터 대륙의 모든 곳에 주술사, 무당, 점성가 등과 유사한 것이 있었고, 그에 따른 의식 행사나 행위가 있어왔다.

그러나 성현이 나신 곳에서부터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이치가 사회의 인지에 따라 밝혀졌다. 자연, 도, 법신불, 신 등이 있는데, 요즘에는 통칭 '진리'라고 부른다.

이 진리를 배우고 진리적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여러 단체들이 있으나, 고대부터 역사적 맥락을 가지고 내려오는 단체가 종교다.

종교는 마루 종(宗)에 가르칠 교(敎)자를 쓴다. 마루는 곧 으뜸을 의미하는데, 가장 으뜸은 진리이다.

즉, 종교는 진리를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다. 학문에서도 진리를 탐구한다고 하나, 종교가 학문과 다른 것은 진리 연마와 더불어 영성의 교감과 수행이라는 것에 있다.

종교 역할의 기본은 마음의 안정과 기원이라고 할 수 있으나, 심화된 역할은 진리와 마음을 깊이 교감하는 것이다.

종교가 서로 다를지라도 깊이 교감하는 사람들끼리는 배척하거나 다투지 않는다. 진리의 본질에 더욱 깊게 다가서려는 사람들이라 가능하다.

종교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 만큼 문제도 품고 있다. 그래도 세상의 중심에 있는 이유는 진리와 마음을 깊이 교감하는 수행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수행자들에 의해서 진리에 의한 삶이 맑고 풍요롭게 될 뿐만 아니라, 선반 위의 진리를 생활 속에서 숨 쉬게 하는 수행자가 많아져서 진정한 행복이 드러난다고 본다.

<삼동연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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