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切衆生의 本性 2

천지간에 만물이 나열되어 있는 모양은 천차만별이다. 그런데 이들을 자세히 살피면 동서남북 상하의 육합으로 나눠 볼 수도 있고, 이들을 크게 나눠 보면 음양 두 경계로 나눠 볼 수 있다.

즉 비근한 예로 보면 "솔개는 하늘에서 날고, 물고기는 못에서 뛴다"(鳶飛戾天 魚躍于淵 연비려천 어약우연)고 하며, 또는 "물고기는 물이 넓음으로 인하여 온 힘으로 뛰고, 새들은 하늘이 텅 비었음을 믿고 마음대로 뛴다"라고 하여 상천하지로 각각 제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기는 하나 기본적으로 보면 용을 비롯한 비늘족이나 땅속이나 물속을 누비며 살아가는 두겁 족들은 음을 표방하며 살아가고, 날개족이나 털족들은 하늘이나 땅위에 자리를 날거나 뛰며 살아가기 때문에 양을 표방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똑 같이 생명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한 것이다.

이에 비하여 인간은 동서남북 좌우상하를 두루 거느리고 사는 만물의 영장으로 인간이 영장으로서의 본래면목은 동서남북 좌우상하 그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화적인 존재인 것이다. 그래야만이 만물을 제대로 거느릴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며, 만물의 영장된 본의를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즉 천지 가운데에서 하늘이 끊임없이 비춰주는 도리와 땅이 어김없이 베풀어 주는 덕화를 고스란히 이어받아 만물을 향한 천연덕(天然德)스러운 덕성을 갖추려는 노력이 곧 천인합일의 이상이며, 이런 이상을 구현해 나가야 한다는 메시지가 곧 다름 아닌 〈주역〉 64괘마다 제시되어 있는 대상사(大象辭)이다.

우선 천지와 일월이 끊임없이 순환무궁(循環無窮)하는 그 자체를 표상지어 말하면 곧 '일원상'(一圓相)일 수밖에 없으며 일원 그 자체는 곧 '원만구족'이며, 중생이 이 원만구족을 그대로 본받아 실행으로 옮기고 보면 그것이 바로 '지공무사'일 따름이다.

그렇기로 원만구족은 수행의 '본(本)'이라면 지공무사는 수행의 성능으로서의 '성(性)'일 따름이다. 그래서 본래의 마음을 찾아 그 마음대로 행한 결과로서의 성능이 아무런 거침이 없이 고스란히 나타나는 것이 비로소 '본성'을 찾았다고 이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이 일원상을 두고 안이비설신의를 사용할 때에 제대로 이 일원상의 진리를 깨닫고 사용하면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함을 알리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즉 원만구족은 전혀 모나지 않은 '중(中)'이라면 지공무사는 곧 전혀 모자라거나 남음이 없는 '화(和)'와 다를 바 없다. 왜냐하면 가장 아름다운 것은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는 것이며, 넘치는 것도 없고 처지는 것도 없을 뿐이다.

<문역연구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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