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제민 교도·분당교당( 논 설 위 원 )

원불교 100년 성업과제의 구호에 파묻혀 그 이후 교단의 교화 비전이 그려지지 않고 있다. 후천개벽의 대운을 받고 있다는 발전적 교세의 낙관론에 안주하여 50년이나 100년 단위의 업적성취만 중요시 할 것인가? 불과 3년 후에 다가오는 원불교 100년(원기 101년) 이후의 교단의 교화 계획과 목표가 제시되지 않고 있다. 수십만 명이 동원되어 대법회를 열어 원불교 100년 행사를 치루고 난 그 다음 날 이후의 허탈감을 어떻게 하려는가? 우리는 100년의 허수에 속고 있지는 않은가?

원불교 100년 성업의 과제는 미주총부, 국제마음훈련원, 성지장엄화, 교서번역, 방송국 설립 등에서 보듯이 많은 예산이 소요되는 역점사업 중심이며 이 사업의 중요성은 거론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이러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교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특별한 기념연도에 맞추어 한시적 대단위 사업을 펼치는 것은 장기적 교화발전 계획에 포함되는 어느 한 해의 일일 것이다. 4대 종교의 위상에 맞게 100만 명의 교도는 확보해야 한다는 플랜을 세우고 그에 맞는 교화발전 5개년 계획이 나와야 한다고 본다. 100년 성업 뒷바라지 일에 매달려 교정원이 교화발전 장기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면 국방부가 어느 한 해를 기념하는 특공대 업무에 매달려 10개년 국방 현대화 계획을 내 놓지 않는 것과 같다고 본다.

중장기 교화발전 계획은 100년이라는 특정연도와는 별도로 5년 정도의 기간 단위로 지속적으로 매년 제시되어야 하고 5년 전 계획 수립 시 전망했던 미래 예상치는 변화되는 환경에 맞게 매년 수정되고 목표는 새 환경에 맞게 조정되면서 이에 따라 한해의 세부 실천 계획이 수립되어야 한다.

1960년대 한국은 세계 최빈국 대열에서 외국 원조에 의존하던 나라였었다. 오늘날 한국의 경제력이 세계 10위권 이내에 들만큼 국력이 향상 된 성장의 밑바탕에는 1962년부터 1986년까지 경제기획원 엘리트들에 의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란 국가적 계획이 5년마다 수립되어져 왔던 것이다.

번성하는 미래가 있는 기업이나 단체 또는 집단은 반드시 그 미래를 설계하는 두뇌층을 조직적으로 두고 있어서 지속적인 성장 모델을 제시하고 한 해의 성취 목표를 달성하는 기준으로 삼고 있다. 원불교 백년 성업 달성이 3년 이후로 다가온 만큼 이제 교정 정책 엘리트들은 100년 이후의 교화발전 계획을 어떻게 수립할 지 연구하여 전 교도들에게 제시하여야 한다.

교화발전 계획은 교당은 교당대로 교구는 교구대로 우리 원불교인 모두의 숙제이기도 하다. 몇 년전부터 각 교당과 교구마다 비전 구호가 생겼다. 필자의 소속교당인 분당교당만 하더라도 비전 구호 700~700 (2100㎡ 교당, 700명 법회)이 우리가 달성해야 될 목표로써 수년 동안 우리에게 갈 길을 제시하여 준 지표였다. 이제 3년 남은 시점에서 법당 확장과 교화 모두 반만 달성하였다.

교화 목표가 3년 후 달성되건 안 되건 과거 5년 전에 비전이 수립되었듯이 이제 새로운 5년의 교화 목표가 설립되어야 한다. 매년 무엇이 문제인지 점검되어야 하고 새 목표가 주어져서 희망찬 전진이 있어야 한다. 생각 없이 분당교당 교도회장 직을 맡고 있는 필자는 책임을 통감한다. 경기인천교구는 2만 명 대법회 개최를 비전의 한 축으로 하고 있다. 지금 교도 수가 2천명인데 기념일 하루 날을 잡아 교도와 그 가족과 주변 인연을 동원해서 2만 명 법회를 본들 그 날이 지나고 났을 때의 실질 법회에 참석하는 교도의 교화 계획은 무엇인가? 비싼 명품을 든 여인이 비를 만났을 때 머리에 쓰면 짝퉁이고 가슴에 품으면 진품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이 있는 좋은 유머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더 생각이 깊은 사람은 명품인줄 알고 짝퉁을 껴안고 비를 맞고 뛰는 여인을 떠올리고는 서글픈 이야기로 들을 것이다.

100이라는 숫자는 일순간에 지나가는 숫자이다. 여기에 가려 5년전에는 5년후를 꿈 꾸었으면서 왜 지금은 5년후의 꿈이 없고 3년후 큰 행사만 치루고 보자라는 것인가? 경인교구의 교화발전 장기계획에도 필자는 교구 상임위원으로서 책임이 크다. 도미덕풍 논설위원으로서의 금년도 마지막 글을 반성문으로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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