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재완 교도 / 여의도교당
오후에 이동을 할 때면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즐겨 듣는다. 빌보드 차트에 오른 곡들을 소개 받거나, 뮤지션들의 인터뷰를 접할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이다. 베테랑 DJ의 안정된 진행과 팝 칼럼니스트, 평론가의 해설을 듣고 있다 보면 해설과 인터뷰, 평론을 준비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자료를 기록하고 분류해서 정리하는 작업을 해왔을까 생각하게 된다. 정글 같은 뮤직 비즈니스의 세계를 냉철하지만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보면서 흥망성쇠를 기록하고 원인을 분석하며 뮤지션들이 느끼는 희로애락에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들!

정산종사께서는 유촉편에 "내 어려서 천어처럼 생각되기를 '풍류로써 세상을 건지리라'하였더니 옛 성인도 '풍기를 바루고 시속을 바꾸는 데에는 풍류 같음이 없다'하셨나니라. 성가를 일종의 노래로만 알지 말라. 그 속에 진리가 들어 있나니, 그 가사를 새기며 경건히 부르라" 하셨다. 또한 도운편에서는 "요순은 천하를 서로 사양하고, 제후는 아홉 고을을 서로 사양하매, 그 화기가 천하에 충만한지라, 그 정경을 풍류에 올린즉 봉황이 춤을 추었다 하나니, 인화(人和)는 양보로써 이루어지고, 화(和)가 지극하면 천하의 기운이 따라서 통해 지나니라"라고 말씀해 주신다.

정산종사께서도 풍류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려는 의지를 보이셨다. 어쩌면 21세기 문화시대에 맞는 법문이라 생각된다. 여의도교당 청년회가 창작성가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에 찾아왔다. 원불교의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 보겠다는 의지와 동시에 기존에 있던 음악을 재해석 해 보자는 생각에서 출발했다고 생각된다.

원음방송 진문진 교무(PD)와 당시 여의도교당 청년회 하성래 교무의 기획으로 시작된 '이야기 대종경 창작성가' 작업은 열악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50여 곡의 창작곡과 녹음음원 그리고 새로운 가능성을 남겼고, 그 후에 지속된 작업들은 최명원 교무가 만든 80여곡의 창작곡들로 이어졌다. 방송을 계기로 탄생한 '창작성가 연구회 마음소'는 여의도교당 청년회에 자리 잡았고, 일부 멤버는 이필우 도무가 프로듀서와 리더인 'Project-1'에 합류했다.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하고, 끊어질 듯 하면서도 이어지고, 시행착오 속에서 길을 찾아가며 때론 미숙함으로 상처를 주거나 받았던 세월이 벌써 10여 년을 헤아린다.

원불교 음악을 해오는 동안 제일 힘든 것은 따라갈 모델이 없다는 것과 외로움이다. 분명히 우리 앞에서 그 일을 해 오셨던 분들이 계실 것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음악에 대한 서원과 열정으로 땀을 흘리고 있을 출가 재가 선·후배 분들이 있음에도 정작 잘 알지 못한다. 아무도 그 분들의 활동을 기록하고 자료를 수집해 놓지 않았기 때문에 좁은 인맥의 그물을 벗어나면 서로 연결될 수 있는 고리가 없다.

항상 어려운 교단 상황이라 당연히 일차적으로는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하나의 성공을 위해서 아흔 아홉 개의 시행착오를 해야 하는 것이 음악이다. 그럼에도 대중에게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내는 확실한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넓은 음악적인 토양 속에서 다양한 시도들이 있다 보면 언젠가는 시대와 인연의 흐름을 따라서 멋진 결과물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있었던 시행착오와 실패조차도 우리 교단의 음악적 자산으로 귀중히 여겨야 한다. 기록이 있고 자료가 있다면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의 시행착오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는 기록하고 주시해 주어야 한다. 그것이 기관이나 단체가 될 수도 있고 열정 있는 개인의 몫이 될 수도 있다. 어쩌면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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