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를 찾는 동기는 다양하다. 외로움을 달래려는 사람,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두려움과 갈망이 아우르는 사람, 진리에 대해 탐구하려는 사람, 진리와의 깊은 교감과 내면화하려는 사람 등. 그러나 종교의 시작은 믿음이다. 진리를 처음부터 알기는 어려워 자기의식의 범주에서 진리를 찾는다.

여기에서 의식이란 한 개인이 성장하며 느낌, 생각, 지식, 행동, 경험, 문화, 기운 등이 어우러져 이룬 인격에서의 판단이다. 이런 의식을 일컬어 세상을 대하는 감각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 감각에 따라 믿음의 품격은 달라진다.

최고의 지식과 재력 그리고 어려운 사람들을 돌볼 줄 아는 따듯한 마음도 있었지만, 마음은 늘 허전해서 뭔가를 갈구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정리되지 않은 감각일지라도 윤리를 넘어서서 진리와의 깊은 교감과 내면화를 막연하나마 바랐다.

주위에서는 이들에게 정리되지 않은 언어로 섣불리 신에 귀의하라거나, 보편적 진리가 윤리인 것처럼 강조하며 자기네 종교로 오라고 손짓했다.

그곳이 정법이 아니라기보다는 그 사람들의 의식 세계를 너무 낮게 보고 접근한 것이다. 정리되지 않은 느낌일지라도 종교를 까닭 있게 찾는 이는 그 느낌에 와 닿아야 하고, 거기에서부터 믿음의 뿌리를 내린다.

믿음에 의한 질문들은 내면의 의식과 결부되어 확신을 얻게 되고, 더 높은 의식의 세계로 옮겨가며 스승과의 신뢰를 쌓는 계기가 된다. 의식의 세계가 높아진다는 것은 진리에 대한 안목이 깊고 넓어지며, 그 이르는 길과 순서를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믿음은 진리에 대한 이해와 교감으로 미혹의 껍질을 벗을 때 깨달음으로 하나 된다. 고등종교란 전통적으로 인류에 이바지한 종교라 할 수 있지만, 내용으로는 진리적 종교의 신앙을 하는 곳을 말한다. 미신이란 알지 못하고 믿는 것을 일컫기 때문이다. 인지가 발달될수록 형식보다는 내용을 찾는다. 원불교는 진리적 종교의 신앙을 개교의 동기에 밝혔기에 깨어난 마음으로 늘 되짚어보고, 본의에 입각해서 개인과 교단이 추슬러 성장해가야 할 과제만 남아있다.

진리적 종교의 신앙을 하는 사람은 마음 가운에 늘 진리가 자리하여, 진리 앞에서는 늘 겸허해져야 한다. 스승도 법도 회상도 마찬가지이다. 소태산께서도 진리 앞에 겸허했다. 교조이나 진리의 매개자라고도 하지 않고, 그냥 스승으로만 여기게 하여 대중으로 하여금 진리를 바로 보게 했다.

내면의 의식이 겸허한 마음속 울림으로 진리와 교감하여 진리를 이해하고, 진리로 삶과 자신을 바라보면서, 균형과 성장을 이루어가고자 깨어난 모습이 진리적 종교의 신앙인이다.

<삼동연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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