波瀾苦海의 一切生靈 2

생령 간에 고통을 받는 최초의 원인은 '어둠'에 있다. 이 '어둠'을 딴 말로 바꿔 말하면 선택의 기로에 서서 옳고 그름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고, 이롭고 해로움을 미쳐 제대로 밝히지 못한 때문일 뿐이다.

즉 마치 사람이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는 언제나 이것과 저것 사이에 놓여 그 어떤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갈래 길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이익을 따를 것이냐? 아니면 의리를 따를 것인가? 또는 반듯한 길을 쫓을 것이냐? 아니면 다소 구부려 있더라도 발 빠른 길을 쫓아 갈 것이냐? 하는 갈림길에 서서 망설이는 것이 삶의 현실인 것이다.

특히 제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닌지라, 남의 말을 듣고 그 말을 믿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믿지 말고 흘러 버려야 할 것인가? 하는 갈림에 서 있는 경우가 많다. 또 어떤 일에 관심을 집중시켜야 할 것인가? 아니면 흘긋 보고 지나쳐 버려야 할 것인가?

참으로 어찌하면 좋을까 하고 망설이는 그 가운데 대부분은 상대의 말에만 귀를 기울인 나머지 자신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또는 전혀 관심 둘만한 진실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초미의 관심을 둔 나머지 결과적으로는 제 맘만 상하는 고통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처럼 말에 속는 것을 일러 '誘'(꾀일 유)라 하고, 정작 관심 둘만한 일은 젖혀 두고 엉뚱한 것에 관심을 두는 것을 일러 '惑'(미혹할 혹)이라 한다. 즉 말에 속는 것은 상대의 말이 언뜻 듣기에는 그럴싸하게 빼어나기 때문에 그런 것이요, 진실을 제쳐두고 거짓에 마음을 둔 까닭은 거의 다 그 어떤 일에 자신의 이익을 지나치게 결부시켰기 때문에 그런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귀가 얇고 마음이 여린 때문에 얻어지는 실수를 일러 흔히 유혹에 넘어갔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런 유혹에 넘어가 고통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으려면 일단 튼튼한 자기관리를 정확히 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

즉 그 어떤 유혹이 닥친다 할지라도 그 유혹을 과감히 뿌리칠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의 중심이 있어야 한다. 즉 첫째는 밝게 알아야 하고, 둘째는 진실과 거짓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녀야 하는데 이런 알음알이와 능력을 일러 이른바 '知識'(앎과 능력)이라 했다.

그런데 제대로 된 지식을 갖추기란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하루 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참다운 지식을 얻기란 매우 어렵기로 예로부터 '선지식(善知識)'이라 했다. 즉 잘 알고 분별하여 아예 고통의 원인을 애당초 없애고 더 없이 즐거운 극락을 자신이 만들어 수용하는 높은 경지를 두고 뜻하는 말이다. 그 가장 기본적인 핵은 바로 '너 자신을 알라'는 깨달음이다.

<문역연구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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