廣大無量한 樂園世界의 建設 1

한 조직의 일원으로 그 조직에 걸 맞는 사람이 되고자 하면 그 조직을 십분 이해하고 일단 조직에 참여할 수 있는 자신의 자격을 갖춰야 함에 있다.
마찬가지로 파란고해의 질곡 속에서 그 고난을 벗어나려 들면 고난을 깊이 이해하고 벗어날 수를 찾는 것이 천만번 옳다.

어둠이 고통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면 그 어둠을 과감히 깨끗이 씻고 일어서야 할 번뇌의 청산서가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사물에 대한 인식이 옳아야 하고, 받아들이는 감수성이 맑아야 하며, 생각이 자아위주로 있는 것을 과감히 바꿔야 하며, 생각에서 인식으로 넘어가기 이전에 비교가 정확해야 한다.

그래야만 끝내는 올바른 인식을 할 수 있으며 올바른 인식만이 어둠을 물리치고 번뇌를 청산할 수 있는 수지 대조가 정확한 마음의 계산서가 나올 수가 있다.

그래서 공자께서도 이르시기를 "배우고 때때로 익혀 나가면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悅乎)라 하셨다.

즉 어둠을 청산하려면 우선 자신의 마음이 기뻐야 한다는 말이다. 깜깜한 자신의 마음을 환하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아무래도 학습을 통해 자신이 지닌 생명의 실상인 기운이 훤히 뿜어져 나와야 한다.

그래서 기쁨이란 '살맛이 난다'는 말로 기운이 용솟음쳐 뿜어져 나온다는 말일 수밖에 없다.
넌지시 던진 이 한 말씀이 온 인류를 기쁨으로 인도하고자 하는 성현의 소망이 들어 있다고 보아야 옳다.

그도 그럴 것이 학습을 통한 자신을 맨 먼저 밝히고 맑힌 뒤에야 내가 다른 이들을 대할 때에 훤하고 올바르고 떳떳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민주시민이라 자부하지만 막상 올바른 민주시민사회를 만들어 나가자면 우선 시민 각자가 참다운 민주사회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춰야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자신이 제대로 올바른 자격을 갖춰 남에게 은연 중에 내 보일 수 있는 향기로움을 갖췄다면 자연히 그 향기를 맡기 위해 먼 천리 밖에서도 스스로 찾아 올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기쁨 다음에 즐거움이 온다고 하여 또 말씀하시기를 "어떤 벗이 천리 밖에서 스스로 찾아드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라고 기쁨을 표현했다.

즉 기쁨은 학습을 통한 자신의 정서라 치면, 즐거움이란 너와 나의 동질성을 확인하는 상호간의 즐거움이다.

바로 그것이라야, '락(樂)'자 자체가 큰북과 작은 북이 서로 어울리니 즐겁다는 말이다.

<문역연구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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