廣大無量한 樂園世界의 建設 2

공자께서 말씀하신 '기쁨'(悅)이란 배움을 통해 얻은 알음알이 하나하나를 마치 이삭을 줍듯이 주워담는 기쁨을 일컫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얻어진 것들을 밖으로 토해 낼 수 있음에서 오는 후련함, 바로 그런 뜻을 지닌 글자다.

이로 인해 사람이 입을 열어(兌) 심중에 깊이 든 말을 토해 내면 마음이 후련하다는 뜻을 합성시켜 '兌'(이미 말로 토해 내면 기쁘다는 뜻으로 기쁠 태)에 마음을 붙여 '悅'(기쁠 열)이라 했다.

따라서 학습을 통해 얻어진 이 같은 기쁨은 일단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자격을 얻은 개인적인 기쁨 그것이다.

그런데 이에 비하여 '즐거움'(樂)은 큰 북과 작은 북이 서로 어울려 얻어지는 대화의 즐거움이나 화합의 즐거움을 뜻하기 때문이다.
앞서의 기쁨과는 달리 이미 각자가 얻어진 기쁨을 서로 나누고 공유하는 즐거움을 뜻한다.

그래서 이른바 '열락'의 맛을 서로가 수용하는 바로 이런 기쁨과 즐거움을 일러 "기쁨 따라 서로가 똑같이 얻는 즐거움"(隨喜同樂)이라 했다.

즉 배움과 익힘을 통한 기쁨이 어울리는 즐거움으로 이어져 나아갈 또 하나의 조건은 서로서로가 가락을 맞춰 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喜'(기쁠 희)는 북치며 노래하니 기쁘다는 뜻을 지닌 글자로 '口'(입 구) 위의 글자는 곧 '鼓'(북 고)를 생략한 것이며, 그 아래에 '口'는 '노래하다'는 뜻으로 곧 '북치며 노래하니 기쁘다'(喜)는 말이다.

사실 어울려 즐거울 수밖에 없는 가장 필수적인 조건은 이성을 갖춘 지성도 중요 하지만 서로의 감정(가락)이 맞는 감성의 접근도 그 어떤 것 보다 더욱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면에서 서로가 잘 조화를 이루려면 일단 노랫말이 좋아야 하고, 또한 공통적인 분위기와 서로의 개성에 걸 맞는 가락이 있어야 너나없이 다 즐길 수 있는 일이 이뤄지는 것이다.

따라서 공자께서는 배우는 기쁨과 나누는 즐거움, 그 다음으로 넓고 큰 무한한 즐거움을 이루어 나아가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 각자의 감정적 조절이 도덕적 성취의 성패여하를 가늠하는 가장 큰 문제라 여겨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성내지 아니하면 이 또한 군자가 아닌가?"라 했다.

즉 도덕적 성취 여하의 마지막 관문은 바로 내가 이성을 갖추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는 자신의 감정 조절이 큰 문제라는 말이다.

<문역연구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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