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유영 교도·하단교당(논설위원)
원불교는 구 한말에 발생한 신흥 종교로 비교적 성공을 거둔 종교단체다. 최수운의 동학 창도 이래 새로운 민족종교들이 비온 뒤 죽순 나듯이 생겨나 민중의 아픔을 치유하고자 노력했지만 다수가 소멸하고 남아 있는 종단도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다. 그렇지만 원불교는 어려운 여건을 극복하고 한국의 사대 종교로 발전했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의 성공에 만족할 때가 아니다. 4대 종교라고는 하지만 불교, 개신교, 천주교와 같은 기성 종교의 수준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2016년이면 원불교 교단은 개교 100년을 맞는다. 개교 100년을 맞는 원불교는 새로운 비상을 위하여 교단적인 역량을 총 집결하고 있다. 개교 100년 결복의 시대를 열어가지 위해 다양한 기념사업과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이 모든 사업은 교화를 위한 것이 돼야 한다. 종교의 존재가치는 교화에 있기 때문이다.

교화는 교도감화(敎導感化)의 준말로 가르쳐 이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사람을 일깨워 고통 받는 자를 편안히 하고 의심하는 자를 믿게 하고 잘못을 저지르는 자를 바른 길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중생을 가르쳐 악에서 선으로 이끌어 주는 것, 즉 불법에 귀의시키는 것을 교화라고 했다.

이런 종교적인 의미뿐 아니라, 비행 청소년들의 문제가 심각한 오늘날 그들이 바르게 자라도록 이끌어 주는 교화의 중요성이 더욱 요구되고 있다.

교화는 종교단체의 최고의 목표다. 최상의 목적이다. 그것은 인류가 가진 어떠한 목적보다도 더 고귀한 것이다. 교화의 생명은 법회에 있다. 학교 교육이 수업을 통해서 이루어지듯이 교당의 교화는 법회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종교의 승패는 법회에 달렸다. 교화가 제대로 안되는 것은 법회 운영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교화의 문제는 법회 운영의 문제로 귀결된다.

여기서 원불교 법회 운영에 어떤 문제를 갖고 있는 가를 살펴보자.

첫째, 교역자의 법회 운영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다. 법회는 원불교 최고의 가치다. 따라서 교당뿐만이 아니라 교단에서 운영하는 훈련원, 각종 학교, 각종 자선 기관 등 원불교의 모든 기관에서 법회를 열어야 한다.

둘째, 교당 운영의 비효율성이다. 교당은 법회 운영을 최고의 목표로 하는 장소다. 주 1회의 법회만 운영하는 것은 투자에 비교해서 그 효용가치가 너무 낮다. 교당은 날마다 법회를 운영해야 한다.

셋째, 법위 단계별로 법회를 다양하게 운영해야 한다. 원불교는 다른 종교와 달리 법위가 있다. 법위를 구분하지 않는 다른 종교에서도 기초나 심화 등의 단계, 또는 경전별로 신자의 수준에 따라 법회를 운영한다. 법위를 만들어 놓고서 그 법위를 무시하고 보통급이나 항마위까지 똑 같은 내용으로 법회를 운영하는 것은 문제다. 학교에서 초등학교 1학년 수준만 가르쳐 놓고 석박사 학위를 준다면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까.

넷째, 성자들의 교화력을 발휘하는 법회를 기대한다. 원불교는 '천여래 만보살'이 의미하듯 성자가 많은 종교다. 종법사, 종사, 정사 등 성자들의 역할을 기대한다. 이들 성자들이 수시로 법회를 열어 관심있는 교도들이 수시로 그 가르침을 받들도록 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 한국은 물질개벽의 시대를 맞아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나고 있다. 그들 가운데는 삶의 의미를 잃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까지 있다. 한국은 어느 새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하게 됐다.

원불교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의 바다에서 '건져주, 살려주' 우짖는 중생의 부름을 법회로서 교화해야 한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는 개교 정신이 빛을 내뿜도록 해야 한다. 법회는 정신개벽의 현장이 돼야 한다.

고통받는 중생들,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위험에 처한 중생들, 모든 위험에서 벗어나기를! 걱정하는 중생들, 모든 걱정 근심에서 벗어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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