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 이후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 해고는 해고자뿐 아니라 온 가족과 공동체에 영향을 미친다. 정리해고 반대 농성에 참여한 아이들.
▲ 벨기에 한 회사가 인터넷 투표를 통해 해고를 결정하는 방법을 썼다. 마케팅대행사가 실시한 이 시장조사는 해고라는 끔찍한 사건을 마켓팅에 이용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작년 대선의 최대 이슈 중 하나는 일자리 창출이었다. 그 만큼 우리 사회는 일할 사람은 많은데 일자리가 부족하여, 일자리에 대한 경쟁이 치열하다. 게다가 일자리가 있는 사람도 해고되어 하루 아침에 길거리로 나앉기도 한다. 일(work)은 사람들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매우 중요한 지표 중의 하나이며, 소득의 원천이고, 가족과 사회적 관계를 유지시켜 주는 등 살아가는데 중요한 수단이다. 특히 임금을 받고 자신의 노동을 팔아 일자리를 유지해야 하는 노동자의 경우는 일자리의 존속 여부가 기업의 행태에 따라 좌지우지되기 십상이다.

우리 사회에 언제부터 해고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일상어'가 되어 가고 있을까? 실업과 해고는 늘 있어 온 문제이지만 IMF시대로 접어들면서 사회구조적 문제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정리해고가 구조조정의 주요 수단으로 시행되어, 쌍용자동차, 시그네틱스, KEC, 진방스틸, 한국공항공사, 재능노동자 등 이 글에서 다 열거할 수 없는 많은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갑작스런 해고로 고통을 받게 되었다. 특히 쌍용자동차는 삼미특수강, 대우자동차 노동자의 해고 이후 우리 사회에서 매우 커다란 파장을 몰고 온 정리해고 사건으로, 매스컴을 통해 '23인의 죽음의 행렬'로 그 참상이 알려져 왔다.

해고는 해고라는 한 순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해고 이후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많은 국내외 연구가 해고와 실업에 따른 결과를 알려주고 있다. 빈곤으로의 추락, 사망률, 건강상태 악화, 질병 및 장해의 증가, 생활양식의 변화, 가족관계 및 관계차원의 변화 등이 주요한 결과로 다루어지고 있다.

먼저 사망률을 살펴 보자. Høyer 등은 2008년 연구에서 정동장애, 우울증 환자들 중 실직자의 자살율이 다른 환자들보다 2.9배 높다고 보고하였다. Lundin 등은 49,321명의 스웨덴 중년 남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1992~1994년 동안 90일 이상 실직을 경험한 남자에서 1995~2003년 동안 사망률이 실직하지 않은 남자에 비해 1.91배 높았고 처음 4년의 사망률이 높아 실직 이후 빠른 대응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1971년과 1981년에 영국(England와 Wales)에서 인구조사에 포함된 대상을 분석해 본 결과(Moser et al, 1990) 일자리가 있는 사람은 평균 사망률보다 낮은 사망률을 나타내고 있다. 실업이전에 질병이 있었던 실업자는 평균사망률보다 3배나 높고 병이 없던 실업자는 37%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계층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회계층에서 실업은 고용된 사람보다 높은 사망률을 나타냈고 특히 심혈관계질환, 폐암, 사고, 자살로 인한 높은 사망률을 나타냈다.

특히 실업후기보다는 실업초기에 사망률이 높게 나타났는데 실업후기에는 구직에 대한 포기나 실업상태에 대한 '강제된 적응'이 사망률을 낮출 수도 있을 것이다.

해고노동자 정신건강 심각
정체성과 의지 잃어
사망률과 자살률 높아


종신고용의 종말과 함께 고용불안정과 실업이 증가하고 있는 일본사회에서도 자살로 인한 사망률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자살률이 높아져 높은 사망률로 이어지고 있음(Lamar, 2000)을 알 수 있다. 1999년 한 해동안 일본인은 총 33,048명이 자살하여 헝가리 다음으로 세계에서 자살률이 높은 나라가 됐다. 이 중 유서를 남겨 자살의 원인을 알 수 있었던 9027건 중 41%가 좋지 못한 건강상의 이유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고,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자살한 사람은 2779명인 30.8%로 자살 3건 중 1건이 재정적인 이유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완전고용에 가깝던 일본사회의 경기침체로 인한 실업의 증가는 전체 자살자의 47%가 실업자였다는 사실로 이어지고 문화적으로 자살을 금기시하지 않는 신토이즘이나 불교의 영향이 간접적으로 자살률을 높이는데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풀이된다.

사망률뿐 아니라 해고노동자의 정신건강도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Amital 등은 2008년 연구에서 주요 우울증 환자들 중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우울증 환자들은 실직과 그로 인한 경제적 고통을 경험이 많다고 하였고, 이들은 다른 우울증 환자에 비해 우울의 정도가 심하고, 자살 경향이 높으며, 치료기간이 길고, 보다 많은 약제가 투여된다고 하였다.

Reininghaus 등은 2008년 영국의 정리해고자 546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사회적 지지가 적은 사람들은 일반인에 비해 정신병의 발생이 7.52배 높고, 중등도의 사회적 지지를 받은 사람은 3.27배, 많은 사회적 지지를 받은 사람은 1.36배 정신병이 발생한다고 보고하였다. 사회적 지지를 많이 받을수록 정신건강이 좋아짐을 알 수 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를 면접한 내용을 보면 "방금 전에 쓴 물건을 찾지 못해 쩔쩔매거나 몇 번 들은 이야기를 기억하지 못해 가족들에게 핀잔을 듣기도 한다." "보통 사람이 10개의 정신 에너지로 기억하고 일을 하고 집중을 한다면, 이들(해고노동자)의 경우 7개 정도가 어딘가로 누수 된다. 이들에게는 늘 해결되지 않은 스트레스가 안에 있기 때문에 3~4개의 에너지로 일상을 한다." 따라서 "집이나 아이와의 관계에서도 실제 쓸 수 있는 에너지가 적고, 집단갈등도 많이 발생한다"는 것이 정신전문가의 이야기이다.

실업 및 해고는 질병과 장해의 정도도 높이고 있는데 실업자는 비실업자보다 더 많은 질병과 건강상의 장해도 가져온다. 영국의 인구조사자료의 분석 결과를 보면 실업여성과 남성은 비실업자보다 2배나 높은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고 비실업자보다 60-80% 높은 건강장해를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Arber et al, 1996). 호주의 경우 인구조사에 포함된 25~64세의 여성과 남성실업자를 살펴본 결과 '건강상태가 나쁘거나 보통'인 사람이 "건강상태가 좋거나 아주 좋다"고 본 사람보다 두 배가 더 많았다. 실업자는 비실업자보다 만성질환은 30~40%가 더 많게, 최근의 건강문제는 20~30%가 더 많게 나타나 실업자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Matters et al, 1994).

이렇듯 실업과 해고는 사망률 증가, 부정적인 사회심리적인 상태, 각종 질병과 장해의 증가 등을 가져온다. 해고는 소득감소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을 경험하고, 소비억제를 낳고 심리적으로 부정적인 상태로 돌입하며 가족간 유대나 결속력의 저하, 사회적 접촉의 저하, 건강악화, 자아정체감의 불투명성, 미래에 대한 계획부재 등으로 연결된다. 구조조정과정의 해고에 따른 사회 심리적 영향은 건강의 문제를 넘어 정체감의 상실, 낮은 자존감, 사회로부터의 주변화와 소외, 가족 불화합, 감소된 사회적 접촉과 지원, 네트웍의 상실, 사회적 낙인 등을 포함한다.

해고자의 삶의 질과 건강이 해고로 인해 훼손되었다면 이에 대한 대안은 사회가 맡아야 한다. 일자리에 관한 한 기업과 정부가 '긴박한 경영성의 어려움'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해고 자체를 막아야 하며, 현재 해고된 사람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건강하고 일할 동기가 있는 사람에게는 일자리가 제공되는 것이 최고의 지향점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일자리의 여부뿐만 아니라 어떤 일자리인가도 중요하다. 임금이 적고 노동조건이 열악하여 지속적으로 일을 하기 힘든 환경이라면 이 또한 건강과 일자리를 모두 잃을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노동환경을 개선하여 산재발생이나 건강훼손이 되지 않도록 법에서 정한대로 기업과 정부에서 그 책임을 다해야한다.

▲ 정진주 / 사회건강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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