廣大無量한 樂園世界의 建設 4

흔히 떠도는 중에 '단 것은 삼키고 쓴 것은 뱉는다.'(甘呑苦吐)라는 말이 있다.
제각기 지닌 입맛대로 입에 맞는 것은 누가 볼 새도 없이 꿀꺽 삼키고, 입에 맞지 않는 것은 아무리 먹어서 좋다는 결과를 알고서도 일단은 뱉어 버리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누구나 다 단 것을 하루 세 끼마다 빠짐없이 먹는 것이 곧 일상생활이기 때문에 어쩌면 단 것에 중독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즉 우리는 하나같이 다 밥 중독이 된 상태라,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었다 할지라도 밥 한 숟갈을 먹어야 속이 편하다.

이처럼 젖을 먹다가 밥을 먹고, 일생동안 밥을 먹다가 죽을 지경에 다다르면 다시 젖과 다름없는 미음(米飮; 죽)을 마시게 된다.그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숟갈을 놓으면 죽는다.

그래서 사는 동안에는 음식을 먹는다 말하나, 죽을 무렵이 되면 거꾸로 식음을 전폐한다고 말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먹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먹는 일보다 더욱 더 중요한 일은 숨을 쉬는 일이다.

그런데 먹는 구멍새는 '입'이지만, 숨을 들이고 내는 구멍새는 '코'다. 그래서 이 두 구멍새를 상하로 붙여 '台'(클 태)라 했다.

그렇기로 코로 숨을 쉬고 입으로 먹는 일은 삶을 유지해 나가는데 가장 큰 일이기 때문에 '크다'는 뜻을 붙인 것이다.

한편 우리말로는 목구멍과 숨구멍이 큰 것이기 때문에 이 두 구멍새를 얽어 '목숨'이라 했다. 그러니 목숨보다 더 큰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목숨은 사람만이 지닌 것이 아니다. 동물도 목숨을 가졌고, 식물도 목숨을 가졌으며, 하찮은 벌레들이나 미물들까지도 생명을 지닌 모든 것들은 다 목숨을 가졌다.
그런데 유독 사람이 다른 만물들과 전혀 다른 까닭은 눈으로 보는 바가 다르고 귀로 듣는 바가 다르다.

즉 보고 듣는 일을 넓히고 키워 광대무량한 즐거움을 맛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존재가 곧 사람이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것까지를 볼 수 있고, 들리지 않는 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어 경험과 설득이 유달리 뛰어난 '聖'(성인 성)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성(聖)'이란 견문의 경험을 뜻하는 '耳'(귀 이; 이해력)과 더불어 '口'(입 구; 설득력)가 '壬'(오뚝할 임)이라는 뜻을 합쳐 만든 글자다.

즉 사실적인 도덕의 훈련과 진리적인 종교의 신앙, 이 두 길이 바로 광대무량한 낙원세계 건설의 설계도요, 원만구족한 인격완성의 조감도일 따름이다.

<문역연구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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