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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당의 비전을 나의 비전으로 1
교당의 비전을 나의 비전으로 1
  • 최선관 교도
  • 승인 2013.01.18
  • 호수 16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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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가 우리나라를 휩쓸고 갔던 그때 나는 상황이 좋지 않았다. 사업 부도로 수원으로 가족들을 이사 시키고, 나는 빚쟁이를 피해 여기저기 떠돌게 됐다.

그리곤 늘 습관처럼 다니던 교당마저 발을 끊고 말았다. 그렇게 다니지 못한 교당에는 이런저런 핑계로 한동안 다시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어떻게든 재기해보려고 분식집을 하면서 배달도 해보고 만두도 만들어 팔며 열심히 살았다.
그렇게 사는데도 생활은 조금도 나아지질 않았고 하던 일마저 집주인이 건물을 파는 바람에 그만두게 되고 말았다.

여기저기 선후배 사업을 도와주며 근근이 살아가며 절망의 나락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더 이상 갈 곳도 할 일도 없어진 나는 처음 이사 와서 몇 번 가 보았던 원불교 동수원교당을 큰 용기 내어 찾아갔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습관처럼 다닌 교당이었지만 그래도 교당에 적을 두고 있던 때가 가장 편하게 살았던 기억이 났다.

다시 찾은 교당에서 교무님은 반갑게 손을 잡아 주었고 저의 존재감을 찾아주시기 시작했다. 기도비 유지비 한 푼 낼 형편이 못되니 몸으로 봉공하며 법회에 잘 나오겠다는 다짐을 했다.

경제적으로 쪼들려 조금 있던 전세금마저 빼서 빚을 갚고 월세 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이던 큰딸의 수시원서 접수비가 없어 친구에게 빌려서 줘야하는 형편이었다.

교당일 열심히 하면 네가 하는 일도 모두 잘 될 것이라며 용기를 주시는 어머님 말씀이 틀림이 없었다.

선배가 투자한 대형 호프집을 한 번 맡아서 운영해보라는 제의를 받고 그 일을 시작하면서 경제적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고 고3이던 딸은 지금 증권회사 3년차 직원이 되어있다.

'한때 인생의 전부가 절망이었는데 지금은 그 절망의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간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요즈음 그 절망의 이유를 잊고 산다.

올해 2월은 우리 동수원교당 비전선포 6주년이 된다. 7년 전 교당을 나오고 다음해 비전계획을 만들고 비전선포식을 하게 되던 때만 해도 모든 행사의 사회를 도맡아 보던 나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고 경제적으로 큰 힘이 되지 못하던 나는 남의 일처럼 느껴졌었다.

그러나 처음으로 시작한 반백일 새벽 불사기도를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나가다보니 나도 모를 기운이 생기기 시작했고 어느 때부터 비전의 한가운데 서있게 됐다. 그리고 5년간 계속해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다보니 나도 모르게 삶의 선물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학원 한 번 보내지 못한 세 딸들은 모두 예쁘게 자라 모두 좋은 대학에 합격해줬고, 아내의 갑상선·고혈압 등 건강도 모두 좋아졌다.

우리 교당은 지난 10월 5년간의 개미불사를 통해 대법당을 새로 꾸미게 됐다. 교당의 비전은 이제 나의 인생의 비전이 돼 새로운 희망의 씨앗을 뿌려 지금은 예쁜 싹을 피우며 작은 열매도 맺고 있다.

교당에서는 법회 때마다 비전구호를 외치고 비전송을 부르고 있다. 원기96년 교화실천경진대회 비전부문 1등상인 교화대불공상을 수상했다

그날 대회에 발표자로 선 나는 중앙총부 반백년기념관 강당에서 목이 터져라 외쳤다. 우리는 4년간을 외쳤고 앞으로 얼마를 더 외쳐야할지 모르겠다고 교당의 비전과 나의 비전은 끝이 없다. 늘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교도로서의 기본에 충실하다보면 다른 어려운 일들이 조금씩 쉬어져 가는 것 같다. 교당을 다시 나오면서 지난 연말 결산법회에서 7번째 무결석 시상을 받았다. 원기100년이 되면 10년 무결석의 작은 목표를 이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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