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도 교당이 설립되길 기원하며

▲ 프랑크푸르트교당에서 열린 일반법회에 참석했다.
▲ 감상담을 하는 정성영 교도.
영국 남쪽 카디프(Cardiff)에 살고 있는 정성영 교도가 영국에도 교당이 설립되기를 간절히 염원하며 지난해 12월21~30일 프랑크푸르트교당 동선을 자발적으로 실시했다.
정 교도는 8박9일의 동선 기간 동안 좌선과 저녁기도까지 틈틈이 일원상서원문을 공부하고, 일기법을 공부하며 소중한 공부시간을 가졌다. 다음은 정 교도의 8박9일 동선을 소회한 내용이다.

홀로 겨울 선방훈련을 실시한 이유

한 해의 끝자락 12월의 마지막 주를 맞으며, 영국의 짙어만 가는 회색빛 겨울 하늘을 뒤로하고 나는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른 아침 비행 출발시간에 맞추느라 출발 전날 나는 부득이 런던 친구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졌다. 실제 비행시간은 1시간 반 정도도 되지 않았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유럽의 모든 국가들은 지리적, 문화적으로 서로 가깝게 느껴진다. 영국에 살면서도 또 다른 유럽국가에서 겨울 선방훈련을 나야만 하는 이유는 내가 사는 이곳에는 아직 우리 원불교, 교당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론 법회 때마다 듣던 종소리는 아련한 향수처럼 그리워지기도 한다. 프랑크푸르트교당 최원심 교무님은 공항으로 도착시간에 맞추어 직접 마중을 나와 주었다. 그리고 독일은 영국 하늘만큼이나 짙은 잿빛 깔로 나를 맞아 주었다.

옛날 배낭여행을 하면서 하루 저녁 머물렀던 이곳 교당에 대한 기억 되살리기는 여의치 않았다. 그저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설기만 했다. 도착과 더불어 법신불 전에 기도 후 교무님과 큰절로 인사를 나누며 나의 짧지 않은 동선은 시작됐다.
▲ 정성영 교도.
원불교 교도로서 정체성

과거 학생회 시절 방학이 되면 잠시라도 원불교 학생훈련에 참가했었다. 그리고 총부에서 가졌던 겨울선방은 내 삶의 기억 한부분을 오랫동안 차지하고 있다. 그 앳된 나이 단전을 찾고 호흡의 흐름에 나름 신경 썼던 겨울 선방 나기는 원불교 교도로서 나의 정체성을 다지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됐다.

여장을 풀며 나는 과거의 경험을 통해 쉽게 이곳에서 입정삼매에 빠질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그것이 오만이고 자만임을 깨닫는데 그리 긴 시간은 필요치 않았다. 아침과 저녁 좌선시간은 너무도 길고 지루하게 와 닿았다. 몸은 자꾸 앞으로 숙여지며 호흡은 거칠기만 했다. 앉아 있으면 있을수록 번뇌와 망상은 초를 다투고 달려들었고 나중에는 아예 내 작은 용량의 머리에 또아리를 틀고 앉아버렸다. 이런 저런 교무님들의 조언들을 챙기며 단전에다 콩을 놓고 밴드로 붙이기도 하고 끝이 긴 나무막대기를 단전에 대어 보기도 하였으나 그 효과는 크지 않았다.

"마음은 미묘한 것이라 잡으면 있어지고 놓으면 없어진다"는 대종사님의 말씀이 새삼 가슴을 울린다. 그렇다. 그 동안 묵혀 놓았던 마음 밭이 며칠의 노력으로 쉽게 옥토로 바뀔 수 없는 것이다. 그저 꾸준히 매 순간 챙기고 또 챙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그 챙긴다는 마음조차도 버릴 수 있을 때 참다운 깨달음의 문턱에 들어설 수 있으리라.

기도시간에 "간절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서원에 대한 다짐이 없어서이다"라는 교무님 말씀에 공감을 느끼고, 태어나 처음으로 내 기도문을 활자화시켜 보았다. 진리에 대한 한번 세운 서원은 반드시 지켜야 하며 이를 어기면 더 큰 재앙이 되어 돌아오리라는 말씀에, 한자 한자 적어 내려갈 때 어떤 알 수 없는 외경심과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하루하루 조금씩 나의 나태한 생활을 바로잡기 위해 유무념 조목도 정해 보았다. 정말 새해에는 일일신우일신 하는 생활로 거듭나야 한다는 무언의 사명감도 가져본다. 그래도 공동생활에서만 가질 수 있는 규칙적인 식사시간과 건강 식단은 그간에 온갖 인스턴트 음식으로 젖어 있던 내 몸의 독소들을 제거하는데 도움이 됐다.

하지만 궂은 날씨만큼이나 흐려져 있는 내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교무님은 프랑크푸르트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거리의 사람들의 물결 속에 내 몸을 맡기며 이 곳 저 곳을 뒤져가며 이 음식 저 음식에 나름의 맛의 잣대를 대어 보았다.

두 번의 일요법회를 통해 교도 회장님을 비롯한 여러 신심 깊은 교도님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또 다른 행운이었다. 이런 만남을 가질 때 마다 인연의 중요성과 함께 나 스스로에게 분발심이 생긴다. 그리고 오랜만에 듣는 법회시작을 알리는 종소리는 꼭 고향을 찾은 느낌이랄까? 특히 영국에서 왔다 하여 교도님들은 나를 더욱 알뜰히 챙기셨다. 교도님댁과 레스토랑을 오가며 환대도 받았고 라인강을 중심으로 멋진 드라이브도 하는 제법 폼나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 프랑크푸르트교당 교도들과의 회화시간.
훈련으로 새해를 맞이하고 싶어

새삼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것은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날들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변화에 안이하고 안주하며 미래에 대한 어떤 목표를 세우는 것도 귀찮아져 버렸다. 이런 삶의 자세를 바꾸고 새로이 나 자신을 다잡으려고 스스로 이번 훈련에 달려 들었다.

항상 분주하게 그리고 남들만큼이나 요란하게 연말을 보내기 보다는 조금은 색다르게 새로운 한해를 설계하는 의미있는 시간을 통해 묵은 해를 보내고 또 새해를 맞이하고 싶었다. 무엇이든 항상 잘 보내야만 잘 맞을 수 있으리라. 물론 처음 기대와 생각만큼의 성과는 아니하더라도 나 자신을 돌아 볼 수 있고 미래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리라는 다짐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그리고 짧지 않은 지난 8박9일간의 나의 일정을 보다 알차게 꾸려주기에 노력해주신 교무님과 프랑크푸르트 교도님들의 가슴 따뜻한 배려에 깊은 감사의 정을 무딘 글에 담아 전하고 싶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