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덕정 교도 / 로스앤젤레스교당
우리 교단은 과거에 볼 수 없던 훌륭한 교법을 준비해 놓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지나던 사람이 원불교교당 앞에서 발길을 멈추고 한 번 스스로 들려 보고 싶은 진한 충동을 느낄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여러 해를 두고 생각하고 궁구해 봐도 신통한 묘안이 떠오르지 않아 고민하던 중 어느 날 일찍 잠이 깨어 그 화두를 다시 떠올리니 현대인들이 가장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들이 초조하고 불안해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이어서 생각하니 바라는 것은 행복이요, 불안 초조한 것은 물질의 노예가 되어 있어 그럴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크고 확실한 답을 대종사께서 100년 전에 밝혔는데 우리가 보다 능동적으로 오늘의 현실에 적용치 못한 아쉬움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원불교는 더 강한 구호를 들고 불안초조하고 괴로워하는 군중 속에 다가가야 한다. 그것은 "인간은 돈과 물질의 노예가 되어선 안 된다"이다. 현대인들이 왜 안정을 얻지 못하고 불안하고 목말라 하는가? 바로 목표 설정이 잘못되어서다. 너나 할 것 없이 상류층의 최고만 바라보고 뛰어가고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진정한 행복은 중간층에 있다. 우리는 분명히 알려줘야 한다. 경제적 중간생활과 도덕적 중도생활이 진정 우리가 바라는 행복이라고, 그리고 재물과 권력이나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서 베풀지 않고 사는 것은 바로 죄가 되고 내생의 빚이 된다는 것을! 누구나 목표가 중간쯤이면 이미 도달한 사람도 많을 것이요 설사 낮은 처지에 있다 해도 중간층의 삶을 목표라 생각하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고 희망이 보일 것이다. 또한 우리 교법에는 중도 생활의 중요성을 깨우쳐 주고 있다. 우리가 교당에 다니는 것은 용심법을 배워 실천하는 것이 목표라 할 때 용심법은 바로 행복을 창조하는 길이다. 그렇다면 우리 교당은 '행복 찾기 운동본부'가 돼야 한다. 사회는 점점 극도의 이기주의 속에 인정은 매말라가고 대화는 단절되고 IT산업의 발달로 머릿속은 비어가고 있다. 더구나 행복의 표준을 물질과 명예에 두고 있어 고해의 파도는 더 높아지고 있다.

이런 시기를 당해 우리는 원불교 간판 아래 또 하나의 간판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것은 '행복 찾기 운동본부'다. 그리고 그 옆엔 '인간은 돈과 물질의 노예가 되어선 안 된다'는 현수막도 필요하다. 이런 간판이 걸리면 스스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이런 손님들을 위해 우리는 이미 완벽한 교법이 준비되어 있다고 본다. 그리고 중간점을 목표로 하면 사회발전이 안될 거란 생각도 지워야 된다. 모두가 중간을 지향하면 그 중간점도 계속 상승하기 때문이다. 또한 상류층에 있는 사람은 계속 베풀지 않으면 죄가 되고 빚이 된다는 인식도 같이 심어주면 상류층이 막연한 선망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교당에 찾아온 신입교도에게 처음부터 일원상의 진리를 가르치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 우선 용심법을 가르치는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 참마음 찾는 공부부터 바르게 시키다보면 참마음을 찾게 될 것이요, 나아가서 닦게 될 것이요 쓰게 될 것이니 그게 바로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임을 알려줘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교도들부터 심신 간에 잘 닦아 우리가 행복을 실천해야 된다. 교도들간 작은 잘못을 서로 용서하고 교도와 교무들이 미소를 잃지 않고 웃음 가득한 교당이 되면 행복 찾기 운동본부에 찾아온 손님들이 자동으로 교도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한다.

원불교 총부와 각 교당이 행복 찾기 운동총부 및 본부가 되어 현대인들에게 안식처가 되고 행복을 찾아가는 큰 길이 되길 마음깊이 사은전에 심축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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