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막연한 의구심이 풀리지 않은 채로 뭉치다가, 알지 못하는 기도나 화두의 형식 등을 빌려 물아의 경지에 들고서는 무언가와 교감하는 그 누군가가 인류의 고대부터 있어 왔다.

이들 중에는 어떤 영혼과 교감을 통하여 영매자가 되기도 한다.

때로는 지고한 존재와의 교감을 통하여 계시를 받기도 한다. 또한 의식이 열려서 영혼의 세계를 경험하는 이와, 궁극적이면서 우주 자연과 더불어 하나가 되거나 깨달음을 얻는 이도 있다.

영적인 교감은 다양하기도 하지만, 깊이와 폭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인류 사회에 영향을 지대하게 미치는 것은 인류의 삶과 영혼의 삶의 연계성을 이해함으로써 인간의 삶에 법칙의 기준점이 된다는 점이다. 나아가 인류와 자연의 이치를 알게 함으로써 궁극적인 삶의 방향이 서게 되기도 한다.

세상이 존재하는 이치를 알고자 함으로써 인간과 자연의 궁극적인 근원과 나타나는 경로, 그리고 움직이는 이치까지 알게 되는데 이것을 보편적으로 진리라고 일컫는다.

모든 이가 이러한 진리를 인간의 굴레에서 초월적 체험으로 알기는 어렵다. 인간으로서의 보편적인 접근은 깨달은 자에 의한 보편적인 진리에 다가서서 배우고 실천하며 내면화하는 게 바람직하다. 어찌 생각하면 요리된 음식을 먹는 것이 쉬울 수는 있어도 신선함이 없다고 여겨질 수도 있는 대목이라, 진리에 의한 수행보다는 깨달음에 욕심을 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깨달은 자의 한결같은 표현은 '깨달은 후에 내 놓은 진리에 의한 수행법을 깨닫기 전에도 알았다면 그 수행법대로 했을 것'이라고….

처음의 수행은 주체할 수 없는 의구심과 막연하고 근거 없는 감각적인 자신감과 확신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온갖 시련과 고난을 불굴의 의지로 이겨내며 없던 지혜도 생겨나는 등 상식적이지 않은 결과도 만들어 낸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수행하고 성장해 가는 데에는 진리에 의한 체계적이고 보편적인 수행의 방법에 의해서 이루어져가기 마련이다.

또 하나는 깨달음에 이르기까지의 마음과 행동의 힘이 깨달음과 더불어 수행의 완성도에 접근할 수 있게 하지만, 미진한 부분은 깨닫고 나서 다듬어지는데 그 다듬는 부분까지 수행법으로 내놓았기 때문이다.

가장 바람직한 수행이라면 깨달은 자가 밝힌 진리에 의한 수행방법을 삶의 바탕으로 삼아서 인품을 이루는 일이다. 그 수행 길을 따라 가다보면 진리와의 교감도 이루어지는 것이라 별도로 마음을 내어서 미혹의 고행길을 자초할 필요가 없다.

<삼동연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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