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배달된 신문을 집어 들고 화장실로 간다. 볼 일을 마치고 휴지를 드르륵 당겨 뜯는다. 식탁에 앉아 아침밥을 먹다 묻거나 흘리는 걸 냅킨으로 닦는다. 출근길 전철 역 앞에 비치된 무가지를 집어 든다. 회사에 도착하면 전날 들어온 팩스를 확인한다. 컴퓨터를 켜서 이메일을 확인하고 주요 자료를 인쇄한다.

점심시간이다. 식당에서 밥값을 계산하고 영수증을 받는다. 커피전문점에서 일회용 컵에 담긴 커피를 한 잔 사고 또 영수증을 받는다. 돈을 찾기 위해 은행 ATM기로 가서 돈을 찾고 명세서를 뽑는다. 감기 기운이 있는지 콧물이 자꾸 흐른다.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 콧물을 닦는다. 오후 업무를 마치고 퇴근하며 약속했던 음악회에 가기 위해 간단히 햄버거로 저녁을 때운다. 포장지를 벗겨 햄버거를 먹고, 일회용 컵에 든 콜라를 마시며 입가심을 한다. 공연장으로 들어가면서 여러 음악회를 알리는 포스터를 본다. 매표소에서 티켓을 받고 프로그램이 적힌 책자를 받아들고 연주를 들으러 공연장으로 들어간다.

연주자들 앞 보면대 위에는 악보가 놓여있다. 음악회가 끝나고 어두운 밤거리를 걸어가는데 인도 위에 널브러진 전단지가 어지럽다.

온통 종이와 함께 하는 하루

아침부터 저녁까지 우리 생활에서 종이를 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물건을 사면 딸려오는 포장지, 통조림 캔이나 각종 병에 붙은 종이, 식품포장재 바깥에 붙은 종이 스티커. 뜯어보지도 않고 쓰레기통으로 들어 가버리는 홈쇼핑 우편물들과 지역정보지 등등. 그런데 이 종이는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우리는 종이를 보며 결코 숲을 떠올리지 못한다. 그게 몇 백 년 전 한 알의 씨앗에서 시작된 원시림 어딘가에서 아주 작은 땅 몇 뼘을 차지하고 자라던 나무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가 없다.

나무가 종이로 되는 과정을 잠깐 살펴보면 숲에서 나무를 베어 트럭, 기차, 배 등을 이용해 제지공장으로 운반해 와서 잘게 자른다. 나무의 딱딱한 성분인 리그닌을 제거한 뒤, 셀루로오스(섬유질)를 부드럽게 만든다. 하얀 종이를 얻기 위해 많은 화학약품으로 표백하면 고급 펄프를 얻게 된다.

이 펄프를 물에 희석시켜 망에 흩뿌리고 물기를 말리면 '종이'가 탄생한다. 오늘날 포장지나 휴지, 냅킨 등으로 쓰이는 종이의 질은 대단히 좋다. 특히 부드럽고 하얗고 질긴 질 좋은 종이를 얻기 위해서는 몇 백 년의 역사를 간직한 '원시림'의 오래된 나무로 만든다.
산업용 나무의 42%는 종이 원료

인류는 종이가 발명되기 훨씬 이전부터 어딘가에 기록을 남기고 싶어 했다. 돌이나 점토판에 남기던 기록을 고대 이집트인들은 파피루스라는 풀의 줄기 속을 뽑아 긴 띠를 겹쳐서 말려 부드러운 종이처럼 만든 것 위에 남겼다. 뭔가를 기록하고자하는 인간의 욕망이 기록할 데를 찾기 시작했다. 그 뒤 동물의 가죽을 부드럽게 해서 만든 '피지'가 등장했다.

종이는 언제 만들어졌을까? 최초로 종이를 만든 사람으로 중국의 채륜을 말한다. 그는 꾸지나무 껍질을 짓이겨 물에 희석시킨 다음 말려 종이를 만들며 한지의 역사를 열었는데, 채륜은 꾸지나무뿐 아니라 리넨의 재료인 아마와 대마 등 식물로도 종이 만드는 법을 전했다 한다.

오랜 시간 동안 종이는 동양에서만 만들어졌다. 그러다 종이가 유럽으로 전해졌고 그때만 해도 종이는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거의 넝마를 원료로 종이를 만들었다. 나무줄기로 종이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150년 정도 되었고, 그 뒤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수공업이던 제지기술이 산업혁명으로 기계화되면서 종이를 만드는 속도가 빨라지고 생산량이 놀라운 속도로 늘어났다. 생산량이 늘어나니 행주대신 종이 타월이, 손수건 대신 휴지를 휴대하는 문화로 바뀌는 등, 우리 생활재의 많은 부분이 종이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현재 산업 분야에서 사용되는 나무의 42퍼센트가 종이의 원료인 펄프로 쓰인다고 한다. 그리고 그 펄프의 원료인 나무는 숲에서 가져온다.

종이는 숲이다

제지회사들이 숲을 벌목한 뒤 그곳에는 대개 펄프의 원료가 될 나무를 심는다. 숲이 뭉텅뭉텅 잘려나간 자리에 새롭게 나무를 심는데 뭐가 문제일까 하는 당연한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자. 펄프로 쓰기에 좋은 수종을 골라 심다보니 자연스레 형성된 숲이 아니라 일종의 나무농장이 된다.

단일 수종이니 병충해가 돌면 그 숲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많은 화학물질을 그곳에 뿌려댄다. 그러니 그곳에 다른 생물이 함께 살 수가 없다. 숲은 다양한 생물이 살며 물을 정화시키고 큰 비가 내리면 스펀지 역할을 하며 홍수를 조절하는 기능도 하는 곳인데 나무농장은 더 이상 숲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제지회사는 제초제에 영향을 받지 않는 나무, 생장속도가 빠른 나무, 나무의 딱딱한 성분인 리그닌 함량이 낮은 나무(리그닌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펄프공장에서는 더 많은 비용과 노력이 들어가므로)를 유전자조작으로 만들기에 이르렀다. 일명 '프랑켄 트리'. 그런데 프랑켄 트리는 그 자체로도 문제지만 자연 상태의 숲으로 퍼져나갈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예측조차 두렵다고 한다.

숲의 보전은 양심에 달렸다

어떻게 하면 종이로 사라지는 숲을 최대한 막을 수 있을까? 먼저 재생 종이를 사용하는 거다. 이미 만들어진 종이를 재생해서 쓸 때는 새롭게 숲을 없애거나 펄프를 만드는 과정에 들어가는 많은 화학약품이 필요 없다. 과거 재생종이의 질이 칙칙하고 거칠었던 것과 달리 요즘 재생종이의 질은 새 종이와 구분이 어려우리만치 좋아졌다.

문제는 소비자의 태도다. 제지회사에 재생종이의 사용을 요구해야하고, 종이가 재활용이 제대로 될 수 있도록 가정에서 분류 배출을 확실히 하는 게 중요하다. 휴지대신 손수건을, 종이 타월 대신 행주를 사용하고, 일회용 대신 다회용을 사용하는 생활습관도 숲을 보전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각자의 양심에 달린 문제다. 내가 직접 도끼로 숲의 나무를 베지 않아도 휴지 한 장을 '톡'하고 뽑는 그 순간 나는 도끼를 든 나무꾼이 되는 것이다. 숲만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숲에 살고 있는 뭇 생명 또한 함께 제거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 도끼질은 결국 우리를 향하게 될 거라는 거다.
▲ 최원형 / 불교 생태콘텐츠 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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