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입은 염불합시다

▲ 장오성 교무 / 경기인천교구 송도교당
염불은 일상생활 속에서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행법

'노는 입에 염불하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염불을 비하하는 듯한 말로 쓰이고 있지만 이 속담은 원래 고려시대 나옹대사께서 지은 승원가라는 가사에서 최고의 수행법인 염불을 권장하며 나온 말입니다.

'승속남녀 물론하고 유무식 귀천간에, 농부거든 농사하며 노는 입은 나무아미타불, 길녀거든 길쌈하며 노는 입은 나무아미타불, 어떤 일을 당하여도 나무아미타불 기뻐도 염불하고 슬퍼도 염불하여, 행주좌와 이러하면 후생극락 어려울까'

염불은 일과 수행을 나누지 않고 일상생활 속에서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행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공부인들이 염불을 크게 활용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문구가 너무 구태하게 여겨져서일까요? 사실 '나무아미타불'만큼 귀한 최상의 문구도 없는데 말이예요.

'나무아미타불'이란 지금 이 순간 나를 괴롭히거나 복잡하게 만드는 온갖 생각들을 깨끗이 지우고 '본래 부처님인 나 자신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니까요. 염불을 잘 하면 편안해지고 행복해지고 모든 일을 가장 잘 성취하게 할 힘이 나옵니다. 단지 문구 여섯글자를 일심으로 계속해서 외울 뿐인데 말입니다. 정말 쉽고 언제 어디서나 활용 가능한 최고의 수행법이지요.

그래서 새 부처님 대종사도 염불을 좌선과 나란히 11과목 중 정신수양법으로 정해주신 것입니다. 효과는 좌선의 공덕에서 밝혀 주신 것처럼 똑 같으면서 좌선보다 훨씬 쉽고 활용 만점인 수양과목이 염불입니다. 좌선을 제대로 하자면 호흡법, 자세, 원리 등이 다소 전문적이고, 자칫하면 몸에 무리가 오기도 합니다. 언제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주위가 시끄럽거나, 정작 힘든 경계를 당했을 때는 선이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염불은 조용하거나 시끄럽거나 간에 무시 무처로 언제나 꺼내 쓸 수 있는 휴대용 수행법입니다. 방법도 간단하니 유무식 남녀노소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 일 그 일을 하면서 노는 입은 나무아미타불을 하면 됩니다.

문구에 마음을 두는 수행법

수행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어떤 것이 절대적으로 옳거나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 더 낫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공부인의 근기와 상황에 따라 방법을 달리해서 하면 됩니다. 다만 하고 안하고의 문제입니다.

수행이란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한곳에 집중하여 다른 모든 망념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을 어디에 둘 것이냐'가 이런저런 수행법들을 만들어냅니다. 염불은 '나무아미타불'이라는 문구를 소리 내거나 속으로 부르면서 그 '문구에 마음을 두는 수행법'입니다.

소리 듣기는 떠도는 마음을 한곳으로 붙잡는 가장 좋은 명상법이기도 합니다. 염불도 일종의 소리명상입니다.

나무아미타불을 입으로 말하면서 그 소리를 듣는 자가 누구인가를 돌이키며 귀로 또렷하게 듣는 것입니다. 그래서 염불은 다른 선법과 달리 무기공에 빠지지도 않고 생각이 날카로워 지지도 않은 채 일심을 만들 수 있는 완전한 수행법입니다. 일이 없을 때는 물론이고, 내 마음을 흔드는 경계들이 오면 그때 얼른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며 흔들리기 전의 평화로운 상태로 되돌리면 됩니다. 자기의 염불소리를 한 글자 한 글자 따라가면 어느새 잡념들, 요란하게 부풀었던 마음들이 흔적 없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평화로움이 들어섭니다. 그 상태가 극락입니다. 극락 상태의 마음으로 그 일 그 일에 임하면 목적하는 일마다 원하는 대로 잘 이루어지고, 사람과의 관계도 다 좋아집니다.

자기 삶이 변하면 수행 잘하고 있는 것

수행이란 결국 자기 마음하나를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가방 크다고 공부 잘하는 것이 아니듯이 하루 몇 시간씩 염불하고 좌선하고 전서를 몇 번째 쓰고 교당을 몇 십년을 다녔노라 하고 자랑삼을 일이 아닙니다. 해왔던 공부로 인해 일심이 되고 있는가 아닌가, 그로 인해 자신의 생활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 정작 경계를 당해 얼마나 수행법들을 활용하여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하게 마음을 쓰고 취사력을 행하며 효력을 보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모든 순역경계를 당하여도 항상 각자의 심성 원래를 반조하여 염불로써 안정을 시키는지 시키지 못하는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지, 신앙수행의 횟수나 길이에 속으면 안됩니다.

수행하는 목적은 삶이 자유롭고 행복해지기 위해서입니다. 자기 삶이 변하면 수행을 잘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우리 공부인은 '삶에서 부딪치는 바로 그 문제'를 수행의 과제로 삼을 줄 알아야 합니다. 공부인에게 경계가 있다는 것은 자기 힘을 기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니 어찌 보면 참 은혜로운 일입니다.

화가 날 상황에서 정말로 염불이 잘 되는지 얼른 염불이라는 수행카드를 꺼내서 써보는 것입니다. 자기의 소리에 집중하면서 십분 정도 염불을 했는데 마음상태가 달라진다면 얼마나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며칠을 그 생각으로 끙끙거리고 이사람 저사람 마음 건드려놓고 그랬을 텐데 말입니다. 경계 없기를 바라지도 말고 피해 다니려고만 하지도 말고 남의 탓으로만 돌리고 다니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름만 공부인이고 이름만 어른이지 힘은 하나도 쌓이지 않는 만년 어린애이고 늘 고통이 따라다닐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일체가 곧 수행도량입니다. 불법을 자기의 삶으로 척~ 가져와서 자기 안에서 소화해 내야 합니다. 그래야 힘이 쌓입니다. 수행은 '하는' 사람이 임자입니다. 극락 맛을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입니다. 극락을 맛보고, 신앙과 수행의 참 자리를 먼저 아는 일만은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말고 욕심을 내야 합니다. 우리 다 같이 노는 입은 염불하여 늘 극락생활 합시다.

"무시무처의 휴대용 수행법
염불로 마음안정, 극락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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