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연하 / 은혜학교
우리 아이들은 참 어여쁘다. 아이들은 참 순수하다. 이야기를 하는 내 목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고, 이야기를 하는 내 입술에 눈을 모은다. 물론 어여쁘고 순수하다는 말은 지극히 나의 주관적인 말이다. 작은 일에도 곧잘 흥분하고, 눈에 잔뜩 힘을 주고, 욕설이 일상어인 아이들이니 다른 이들이 보기엔 나의 말이 선뜻 가슴으로 와 닿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저 더 이상 자라날 수 없는 상처받은 어린 아이일 뿐이다.

얼마 전, 민지가 어두운 표정으로 기숙사 침대에 걸터 앉았다. '무슨 일이 있느냐?' 물어도 시큰둥한 표정만 지었다. 난 민지에게 내가 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하나를 들려줬다. "어떤 한 사람이 있었어. 그 사람은 온갖 지독한 슬픔과 아픔을 겪었지. 그래서 '아! 세상살이는 쉽지 않구나.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암흑 뿐 이구나'라고 생각했지. 사방이 무겁고 두꺼운, 아주 어둡고 숨 막히는, 조그마한 빛줄기라도 들어올 수 없는, 그런 암흑 뿐 이라고…. 그런데, 문득! 어느 순간 이 사람은 이 어둠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어. 그래서 손가락에 침을 발라 그 어둠을 찔러 보았지. 그랬더니 거짓말처럼 그 암흑은 맥없이 뚫려 버린 거야. 믿을 수가 없었지. 그 사람은 지금까지 절대로 열리지 않을 거라 믿었던 그 암흑 사이로 한 줄기 빛이 들어오리라고는…. 그 암흑의 무게가 실체는 있으나 실은 허상에 불과했던 거야"라는 내용의 이야기였다. 수도 없이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나를 괴롭혔던 문제들이, 알고 보면 침 한 방울에도 쉽게 뚫리는 창호지처럼 작은 사건에 불과할 뿐이라고….

민지는 내 이야기가 끝난 다음에서야 어렵사리 자신의 고민에 대해 이야기했다. 자신의 진로와 가정형편에 대한 이야기였다. 은혜학교는 국가의 재정지원이 전혀 없으며, 소액 기부자들의 후원금으로만 운영되고 있는 학교이기 때문에 아이들을 위해 지원을 해 주고 싶은 마음은 가득하지만 실질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때문에 가정형편에 대한 문제를 나에게 이야기 한다고 해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지만, 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 한 후에 조금은 가벼워진 민지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끊임없는 관심이 필요하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 줄 그 누군가를 기다린다.

자신들의 행로를 이끌어 줄 그 누군가를 기다린다.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이런 것들이 이들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맑게 닦아낸 귀와 열린 사유를 내 뱉어 낼 수 있는 깨끗한 생각을 가진 그 누군가 이다. 나는 그 누군가가 되고 싶다.

무심으로 던진 나의 한 마디에 아이들은 상처를 받기도 한다. 나는 다만, 그들 스스로가 내면의 힘을 키울 수 있도록 돕고 싶을 뿐이다. 스스로가 전일을 되돌아보았을 때, '아~! 이 정도면 참 재미있고, 즐거운 인생이었구나' 하고 생각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상처받고 찢겨진 아이들의 마음에 반창고를 붙여 다독여주고 싶다. 그 다독임이 어쩌면 나에게로 되돌아와 도리어 나를 다독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모든 것에 있어 무한대인 우리 아이들의 젊음과 청춘에 건투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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