事實的 道德의 訓練 1

흔히 '사물(事物)'이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지만 막상 사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막상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다.

그런데도 '사'와 '물'이 합성되어 사물이라는 용어를 즐겨 쓴다. 무릇 '물'이라 하면 대부분 형형색색을 지닌 어떤 가시적 물건을 연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형형색색을 지닌 물건들은 구체성을 지닌 물건이기 때문에 눈에 뚜렷하게 보이는 '유(有)'의 세계를 말하지만, '물'에는 반드시 '유'의 세계에만 속하는 것은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無)'의 세계가 종류는 단순할지 모르나 엄청나게 크고도 넓다.

즉 눈에 직접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막연하게나마 느낄 수 있는 '사랑'이니 '번뇌'니 '아름다움'이니 하는 등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추상명사들도 실은 '무'로 분류되는 '물'이며, 나아가 '진리'니 '도'니 하는 등 극추상명사도 또한 '무'에 속하는 '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만유에 통시적으로 나타난 모든 형형색색을 띤 '물'들은 물론 이들의 원천이라 이를 수 있는 '무' 까지도 실은 '물'이기 때문에 사실 '유'와 '무'를 나누거나 합하는 마음까지를 다 포함한 일체가 다 '물'일 따름이다.

그리고 어떤 '물'과 '물'이 서로 부딪치는 계기를, 기틀을 통해 작용되어 일어난 것들을 일러 우리는 곧 '일'이라 말한다.

그렇기로 '물'들은 물 그 나름대로 특성이 있는데 이런 것들이 부딪치는 계기를 통해 일어나는 '일'들은 매우 복잡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일찍이 증자도 말하기를 "물에는 근본과 끝이 있고, 일에는 끝남과 시작이 있다. 그런데 그 먼저 할 바와 뒤에 할 바를 안다면 곧 도에 가깝다 하리라.(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대학>"라고 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물'이란 아주 가깝게 말하여 누구나 단순하게 여기는 식물을 가르켜 말한 것이니 곧 하찮은 식물일지라도 뿌리와 가지가 있다는 말이요, '사'란 복잡다단한 인간사를 두고 이른 것이니 인간의 일이야말로 끝마무리가 곧 새로운 시작의 발판이 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뿌리가 있음에 가지가 있음을 알듯이 인간사도 언제나 끝이 곧 시작의 바탕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아 일의 선후를 잘 알아 풀어 나가면 곧 도에 가깝다는 말이다.

그래서 일속에 흐르는 감출 수 없는 알맹이가 곧 '실(實)'이며, 이 '실'을 얻기 위해 일이 있을 때나 없을 때를 막론하고 유무념 대조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다.

<문역연구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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