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철 교도 / 가락교당
얼마 전 전·현직 교구 청운회 회장들이 3개월마다 성지 및 전국 훈련원을 돌면서 1박2일동안 기도하고 공부하는 청운새삶실천단에 참석했었다. 그날 참석자 중 한 분이 교무님과 교도들간의 불화로 몹시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신다.

회화 시간에 이 문제를 주제로 하여 많은 의견들이 개진되었다. 역시 농익은 공부인답게 지혜로운 말씀들이 많이 쏟아졌고 많은 부분 가슴에 와 닿았다.

그런데 의외로 적잖은 분들이 이런 유사한 문제로 가슴앓이를 한 경험들이 있고 심지어 가슴 아픈 지난 기억을 떠 올리는지 울먹이기까지 하신다.

한 생을 안 난 폭잡고 중생을 건지려 제생의세의 길로 나선 교무님, 그리고 재가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일원회상의 영겁주인이 되고자 생계도 불고하고 무아 봉공하시는 교도님들이 왜 이렇게 서로가 가슴앓이를 해야 하는가.

나는 교당에 나가면서부터 은행원이라는 직업 때문에 줄곧 교당 돈을 맡아서 관리하게 됐다.
돈을 관리하는 일이라 중도에 그만 두기가 쉽지 않았고 자연히 책임을 갖고 교당 일을 하다보니 신심이 나고 주인이 된 듯하다.

덕분에 주위 좋은 인연들을 많이 만나서 공붓길도 제대로 잡은 것 같다. 혼자서 그냥 그냥 교당에 다녔다면 지금 만큼 철이 들었을까? 고맙고 다행스럽다.

초발 신심으로 열심이던 신입교도인 내게 앞으로 교당 일을 차츰 깊이 하다보면 교무님이나 교도님들이 나의 기대에 어긋나고 그들에게서 실망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미리 일러 주신 선배님의 말씀이 교당 생활을 하는데 큰 교훈이 됐다.

"이 세상은 대소유무의 이치로써 건설되고 시비이해의 일로써 운전해 가나니 세상이 넓은 만큼 이치의 종류도 수가 없고 인간이 많은 만큼 일의 종류도 한이 없나니라…." (<정전> 사리연구의 목적에서)

교당일이라고 해서 세상의 복잡하고 다양한 시비이해에서 벗어날 수가 있을까. 우리 원불교인은 대자리에는 밝은데 소 자리에 어두운 것 같다고 우스개처럼 말하지만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공론을 위한 회의에서도 법위등급이 높다고 하여 상식적인 단견(短見)으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일반 교도의 심사숙고한 의견을 무시해 버린다. 회화를 한다하면서도 정작 남의 얘기는 전혀 듣지 않고 가르치려 들고 나름 도와준다는 것이 오히려 잔소리로 주위 인연들을 힘들게 하고 있지는 않은가? 가장 힘든 직장이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라고 한다.

어쩌면 우리 교무님들도 소위 말하는 3D 직군에 해당하는 직업은 아닌지 이제 2년차가 되는 부교무가 건강이 좋지 않아서 휴무에 들어간다고 한다. 잘 생기고 참 대단한 열정을 가진 부교무였는데 많이 지쳐 보인다. 가슴 아프다.

"새 세상의 종교는 수도와 생활이 둘이 아닌 산 종교라야 할 것이다"(<정전> 영육쌍전법에서)

즉 삼학으로써 우리 원불교 교도들은 소 자리에서도 능히 밝아서 혹시 내 발에 밟히어 아파하는 주위 인연은 없는지 잘 살펴 볼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올 한해 경산종법사님의 신년 법문을 받들어서 남의 세정도 잘 챙겨가며 서로 협력해서 정이 넘쳐나는 훈훈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남의 세정을 살피고, 서로 협력하며 훈훈한 정이 넘치는 교당, 그리고 세상이 되길 염원해 본다.
또한 새로운 희망을 만드는 사람들이 희망이 꺾이지 않고 살아가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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