事實的 道德의 訓練 3

'훈련'(訓練)이란 무엇을 어떻게 하도록 한다는 말일까?
첫째 '훈'이란 가르치는 일 중에서 가장 부드러운 가르침으로써 말을 잘 듣고 순종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는 뜻이다.

그래서 순할 '순(順)' 이라는 글자에서 내'천(川)' 을 따고 거기에 '言'(말씀 언)을 붙인 것이다.

그런데 '순종(順從)하다'란 말에서 '順'이란 마치 물이 반드시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머리를 조아릴 수 있도록 말로써 가르친다는 뜻을 지닌 글자요, 따를'종(從)'이란 앞선 이와 뒤진 이가 있는데 어디까지나 앞선 이를 뒤진 이가 가다가 쉬다가 하면서 따른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순'은 오늘날로 말하자면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긍정적인 인식을 갖도록 말로써 가르치는 일 자체를 말하며, '종'이란 후진들은 이미 도덕적으로 앞선 선진의 길을 그대로 밟아 따라 갈 수 있도록 지도해 가는 일 자체를 뜻한다.

이런 면에서 보면 저 일상수행의 요법 중 '돌리자'는 말의 요지는 바람직하지 못한 생각을 바람직한 생각으로 돌리자는 말로 우선 머릿속에 인식을 긍정적으로 돌리자는 말로 '돌리자'는 말 중 가장 큰 핵심은 '원망'을 '감사'로 '돌리자'는데 있다.

또 나아가 '따르자'는 말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따라야 할 대상은 바로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진리의 표준인 일원상이라는 점을 확실히 깨달아야 한다.

"맑은 바람 달 떠 오를 때, 온갖 상이 스스로 그렇게 밝더라"(淸風月上時, 萬像自然明)라고 자신의 깨달음을 글로 밝히신 소태산대종사님의 눈을 닮아야 하 듯 선진을 닮아가는 일이 곧 따름으로서의 '從'일 따름이다. 나아가 '련'이란 본디 가는 실 여러 가닥을 꼬아 엮어서 질긴 실로 만들어 쓰는 것이 원칙이다.

그래서 실'사(絲)' 라 하였고 이 중 한 가닥을 일러 '가는 실 면'이라 한다. 그런데 아무튼 이런 실로 베를 짜려면 아무래도 실과 실을 연결하고 그 연결한 부분이 제대로 연결되어 매끄럽게 '바디'를 통과하면서 떨어지지 않도록 잘 골라야 한다.

그래야만 씨줄과 날줄이 떨어지지 않고 매끄럽게 베가 잘 짜져 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가릴'간(柬)'에 '실'을 붙여 익힐'련(練)'이라 하였다.

그럼 어떤 베를 짜야 할 것인가?

소태산대종사님께서 구간도실 최초의 교당 상량에 쓰신 글귀처럼 가려긴 실로 막힘없이 "둥근 북에 일월을 베틀삼아 춘추법려의 베를 짜야 할 것"(梭圓機日月, 織春秋法呂)이 아닌가 싶다.

<문역연구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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