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대경 교도 / 계룡교당
교화대불공은 어떻게 이룰 것인가. 이것은 자신성업봉찬과도 연관이 있다. 교화는 <정전>에 바탕해 풀어야 답이 나온다. 우리 교화는 대종사님의 법문을 문장으로 풀어가고 해석하는 병에 걸린 것 같다. 대종사의 말씀을 확인하는 수행이 아니라 법문을 공부하는 모습이 교화를 어렵게 한다는 뜻이다. 훈련은 능이 날 때까지 반복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자기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볼 수 있다. 우리의 공부는 염불과 좌선을 하면 다 되는 것으로(<대종경> 수행품9장), 대종사께서 <정전> 한권에 부처의 행으로 살아 갈수 있도록 다 밝혀 주셨다. 그런데 교화 교재 정비니 교화 인프라 구축이니 청소년 교화 준비를 별도로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종사께서는 우리 법을 남녀노소 유무식 다 같이 할 수 있는 공부 법이라 하셨다. 대종사께서는 "너희들 <정전> 한 권에만 전심을 다하라 말씀하셨다. 내 법이 대법이다. 전무후무한 법이다. 내가 다 경험해 보고 내놓은 법이다. 예전에 상근기가 100년 걸릴 것을 나에게 와서 1~2년만 닦으면 그 공효를 이룰 것이다"라고 하셨다.

그런데 현실의 공부는 삼학공부는 멀리하고 덕성을 넓히고 인간미 넘치는 세상을 언급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법신불일원상이 무엇인지를 먼저 가르쳐야 덕성이 넓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정전>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대종사의 법을 믿고 전하러 현장에 나온 교역자들이 오히려 <정전>을 멀리하고 있지는 않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현장의 교화가 더 힘들어지는 것도 이런 교육의 영향일 수 있다. 인재발굴이란 말을 많이 하는데 출가자 중심의 인재발굴도 중요하지만 철저히 깨달은 사람을 재가 출가교도 안에서 찾아야 한다. 출가든 재가든 깨달은 사람을 중심으로 교화를 펼치는 변화도 요청된다.

대종사께서는 성리품에서 "사량으로 이 자리를 알아내려 하지 말고 관조로써 이 자리를 깨쳐 얻으라"고 수행의 표본을 제시했다. 일반적으로 교당의 설교나 교화 모습을 보면 관조할 대상(일원상)은 가르쳐 주지 않고 방편교화에 치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원기100년을 앞두고 해야 할 일을 몇 가지 꼽아 봤다. 첫째는 지자본위로 깨달은 사람을 찾아 교화활성화를 모색해야 한다. 둘째 예비교무 교육이나 훈련원에서 사상선과 일원상 훈련을 최소한 3개월이상 집중적으로 시키자. 법신불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모시는 데 표본의 실체(실물)를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훈련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아마도 교도(재가 출가)들은 마음 속으로 그 의문에 대한 갈증이 클 것이다. '일원상서원문'에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 이 법신불 일원상을 체 받아서라고 했는데 표본의 실물을 확인했다면 체 받을 수가 있겠지만 실물을 확인하지 못했다면 과연 무엇을 체받을 것인가.

또한 '일원상법어'에 법신불 일원상과 같이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각자의 마음을 알자고 했는데 법신불 일원상의 실물을 알아야 양성을 하든지 말든지 할 것이 아닌가. 현장 교화의 어려움은 누구나 아는데 그 원인을 찾아 해결하는 모델이 창출되지 않아 안타깝다.

마지막으로 교단의 일중 중요한 것이 법위사정이다. 재가 출가의 법위사정은 다를 수가 없다. 법강항마위는 법이 백전백승하는 위다. 재가나 출가에게 주어지는 이 법위가 남용되는 경우가 많아 걱정이다. 법이 무엇이고 마가 무엇인지 그리고 법이 승하지 못한 사람에게 법강항마위의 법위를 주는 것은 잘못이다. 법위를 남발하거나 친불친에 끌려 사정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남발하는 법위사정은 교도들에게 존경심을 상실하게 만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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